[동서남북] 말을 빼앗긴 시대
조선일보
입력 2020.06.02 03:16
윤미향 비판엔 "예의 아니다",
조국 수사엔 "인권 침해"
이한수 문화부 차장
예의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엊그제 제21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관련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사건은
'예의'라는 말뜻의 변질이라고 생각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전 이사장이 위안부 피해자 쉼터(별장) 관리를 부친에게 맡기고
수년간 고작 7580만원을 준 게 뭐가 문제냐 옹호하면서 '예의'를 언급했다.
송 의원은
"어려운 시기에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싸웠던 시민운동가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희종 전 더불어시민당 대표는 윤 전 이사장을 비판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향해
"기본 예의"를 지키라고 일갈했다.
윤 전 이사장에 대한 의혹 제기는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윤미향 의혹'을 처음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졸지에 예의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윤 전 이사장에게 예의를 지키려는 '어용 신민'들은
아흔두 살 할머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고 절규하는 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기면 예의가 아니고,
국회의원 권력을 쥔 옛 시민단체 대표에게 의혹을 밝히라고 요구하면 예의 없는 일이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말이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세상이 타락하는 전조(前兆)는 말의 변질에서 가늠할 수 있다.
말뜻을 변질시켜 편을 나누고 내 편의 힘을 모으는 방식은 독일 나치가 쓴 수법이기도 했다.
나치 친위대를 지휘했던 하인리히 힘러(1900~1945)는 1943년 10월 폴란드에서 행한 연설에서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는 일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나치 친위대원들은 정직하고, 품위 있고, 충실하며, 동지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때 품위는 말뜻이 달랐다.
힘러는 유대인들이 품위를 오염시키고 있으니 이들을 절멸시키는 게 품위 있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는 "(품위는) 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동지들에게만 해당되고, 다른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말의 본뜻을 몰랐기 때문일까. 독일 작가인 악셀 하케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인간의 기본 원칙에 해당되는 개념을 뒤틀어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은 고도의 전략"이며
"이런 전략은 대중으로부터 말을 빼앗음으로써 체제 유지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기여한다"고 했다.
"기존 단어에 완전히 새로운 반대 의미를 부여하면 원래 뜻은 사라지고,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빅브러더에 대항하는 이들은 더 이상 아무런 언어도 갖지 못하게 된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22~25쪽)는 것이다.
말을 빼앗는 전략은 정권 유지에는 도움 될지 몰라도 나라는 그로 인해 더러워지고 타락한다.
이미 오염과 타락이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검찰보고서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위법 의혹을 받는 고위 공직자가 비공개 소환 첫 대상이 되었음에도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니
인권의 본래 뜻이 뭔지 헷갈린다.
입만 열면 내뱉는 정의와 진실의 뜻도 지속적으로 변질되는 중이다.
2400년 전 플라톤이 쓴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지 소크라테스가 여러 논자와 논쟁 하면서 시작한다.
그때도 "친구에게 좋은 걸 주고 적에게 나쁜 걸 주는 게 정의"라고 주장한 이가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그 주장의 잘못을 논파한 것처럼
지금 말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예의, 인권, 정의, 진실 같은 말을 온전히 할 수 없게 된다.
이용수 할머니의 의혹 제기에 성실히 답하는 일이 예의이고, 인권이고, 정의이고, 진실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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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2/20200602000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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