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1] 성벽(城壁)과 교량(橋梁)
조선일보
-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5.29 03:14
외부 위협으로부터 제 안전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담을 쌓는다.
성벽(城壁)은 그래서 '전쟁 의식'의 소산이다.
담을 올리는 작업은 축성(築城)이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에 집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일러스트=양진경
신석기 시대 이후 청(淸) 이전까지 중국은 길고 굳센 담을 쌓고 또 쌓았다.
인류가 쌓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담, 중국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그 점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언어의 흔적에서도 이 점은 두드러진다.
위기가 올 때마다 예나 지금의 중국은 늘 "여럿의 뜻으로 성을 쌓자(衆志成城)"는 구호를 외친다.
아주 튼튼한 장벽을 세우려는 갈망은 '구리와 쇠로 만든 담(銅牆鐵壁)'이라는 성어도 낳았다.
견고한 성벽 앞에 펄펄 끓는 물이 흐르는 해자(垓子)까지 있으면 더 좋다. 금성탕지(金城湯池)다.
높아서 기어오르기 힘든 성벽에 깊어서 건너기 힘든 해자까지 갖추면 고성심지(高城深池)다.
그런 담[堵]을 쌓아야 탈 없이[安] 살 수 있다는 것일까.
옛 한자 단어 '안도(安堵)'라는 말도 그 맥락이다.
단어의 요즘 뜻은 "마음을 놓다"다.
그러나 본래는 '담 안에서 편하게 살다'의 의미다.
2000여 년 전의 '사기(史記)'에 등장한다.
일찌감치 숙성한 담을 향한 열망이다.
어디서든 담을 쌓지 않으면 불안한 중국인들의 의식 갈래를 살필 수 있다.
그런 담쌓기는 물론 중국의 전유가 아니다.
늘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인류 보편의 행위다.
이제 지구촌의 담이 곳곳에 또 들어선다. 미·중 마찰, 코로나19로 인해 엉클어진 세계화의 행보 때문이다.
이제는 "지혜로운 이는 다리[橋梁]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담을 쌓는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생각해 볼 때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두고 중국이 많이 인용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전통적 '축성의 사고'로 갈등을 양산한 중국이 먼저 되새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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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8/20200528049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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