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6] 소녀 이미지와 위안부 피해자
조선일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20.05.29 03:14
90년대 초반 정부의 위안부 신고 접수 당시 제출된 피해자 진술서는
위안부 실상 파악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공론화 초기에 작성된 만큼 당사자의 기억이 외부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비교적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근무 시절 접한 진술서상의 피해자들의 사정은 다양했다.
세간의 인식과 다른 면도 많다.
전쟁 시기 군 대상 매춘업의 성행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일본군은 도를 넘었다.
전황(戰況)이 격화되면서
위안소를 안전지대를 넘어 전투 지역 가까이 두고 부대의 일부처럼 운용한 것이다.
여성의 존엄과 신체의 안전이 그토록 훼손되는 처지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면
누구도 자기 발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성과 자발성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이다.
당시 일본 군부에는 남성은 전장(戰場)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여성은 그 남성들을 위안하는 존재가 되어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발상이 횡행했다.
자살특공대, 옥쇄와 궤를 같이하는 군국주의의 광기였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은 그러한 과오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성의 성(性)을 국가의 도구로 삼고 비전투 여성을 전쟁터에 투입하는 비인도적 만행을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일본 내에서 꽤 큰 울림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헌병이 강제로 납치해 외국으로 보내 버린 순결한 소녀가 위안부를 상징한다.
그러한 인식은 의도했건 아니건
정형화된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는 다수의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침묵을 강요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담고 있지도 않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관찰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에서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다.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 실현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방해가 되는지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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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8/2020052804972.html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5] '피해자 의사' 우선이라는 대원칙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20.05.15 03:1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근무 시절 소위 '한·일 과거사 업무'를 담당할 때 일이다.
각종 유족회, 시민 단체의 민원 처리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이던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무궁화 자매회 탄원서'라는 서류를 건네며 자신은 위안부 피해자라고 말문을 열었다.
피해자 33인이 모여 결성한 무궁화회에는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을 수령한 회원들이 있는데,
모 시민 단체의 반대로 이들이 한국 정부의 생활 지원금 수급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가 이를 시정해 달라는 것이 민원의 요지였다.
하소연이 이어졌다. 왜 피해자인 자신들을 놔두고 지원 단체가 정부와 협상하고 모금하는 것인지,
누가 그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한 것인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모 단체와 감정 대립이 있었는지 그들에게 인격 모독을 당해 분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위안부 피해자에도 여러 그룹이 있고 각자 다양한 사정과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자 의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모두 이의가 없다.
2015년 정부 간 합의는 지원 단체들과 일부 피해자의 격렬한 반발로 내내 파행을 겪다가
끝내 파기되었다.
그러나 막상 화해·치유 재단이 설립된 이후 생존자 47명 가운데 35명이 보상금을 수령했다.
무엇이 진정한 피해자 의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들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지만 정부, 유관 단체, 언론 모두 자기 편의에 따라 피해자 입장을
자의적으로 이용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피해자의 집합적 의사를 확인하고 공식화하는 절차와 방법이 존재한 적도 없다.
위안부 문제는 보기에 따라서는 한·일 간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는 기회가 있었다.
피해자 의사 우선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증오와 불신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피해자와 양국 모두에 불행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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