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섹의 아웃룩] 한국, '일본화' 운명 피할 시간 아직 남아 있다
조선일보
-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일본화(Japanification)'저자
입력 2020.05.27 03:12
코로나19 전 세계 각국에 '일본화' 위험 가능성을 매우 높여
韓 지난 10년 '경제 근육' 키우고 수출 의존성 줄일 기회 놓쳐
경제 부양해야 하지만 스타트업과 혁신 위한 공간 만들어야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일본화(Japanification)'저자
최근 몇 년간 경제학자들은 미국부터 독일, 한국에 이르는 국가들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디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지는 것보다
정치인들의 가슴에 더 깊은 공포를 심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는 멀게 보였던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위험을 매우 개연성 높은 현실로 바꿔놓고 있다.
일본의 실수는 금융 붕괴에 계획 없이 반응했다는 것임을 기억하자.
'버블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1990년부터 일본 정부는 수많은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다.
일본은행은 수십 년간 이어질 금리 인하, 양적 완화, 채권과 주식 사재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일본은 경직돼 있고 경쟁력 없는 경제를 구조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었다.
도로를 깔고, 더 큰 국제공항, 스포츠 경기장, 댐, 회의장, 박물관을
1억2600만 인구 국가가 필요 이상 건설했다.
또 엔저로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통화 트레이더와 싸웠다.
30년 동안 일본은 기저 질환이 아니라 병의 징후들만 처리해왔다.
이것이 미·중 무역 전쟁에 일본이 큰 타격을 입은 이유다.
일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처음 나오기 전, 작년 4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7.1% 추락했다.
일본이 코로나 이후 1930년대로 회귀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한국과 미국의 관료들이 잃어버린 수십 년을 피하려면
반드시 일본의 사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美, 지난 3년간 개혁 없었고… 韓, 12년간 기회 놓쳐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3년여 동안 개혁 없는(reform-free) 지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했지만 혁신과 경쟁을 진작하기 위한 노력은 제로였다.
중국은 '제조 2025'에 수조달러를 지출하며
인공지능, 에너지, 마이크로프로세싱, 로봇 공학,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를 지배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트럼프는 석탄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도 지난 10년은 '경제 근육'을 키울 기회를 놓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지난 12년간 한국의 세 대통령은 모두 더 창의적이며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 회복"이라고 천명하며 당선됐다.
그는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도 신뢰를 잃어가는 경제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세부 내용은 달랐다. 박근혜는 중소기업 지원을 더 강조했으며, 재벌의 힘도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 모두
전통적 방식의 경기 부양과 수출 주도 성장을 혁신성과 생산성 촉진보다 중요시했다.
두 대통령은 중국이 시장 점유를 확대하자, 현재 위치를 보호하려고 했다.
2017년 '분수 효과'를 강조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전임 대통령보다 고소득 일자리 창출, 소득 주도 성장, 경제 에너지 창출 문제에
더 진지해 보였다.
정권 초기 문재인은 최저임금 증가, 자영업자 세금 지원 같은 몇 가지 변화된 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위해 주로 오래된 방식의 재정·통화 부양책에 의존했다.
이전 10년과 마찬가지로 그의 재임 기간 느린 변화는 이제 역효과를 내고 있다.
세계 12대 경제 대국인 한국은
1~3월 경제성장률이 6.8%나 떨어진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충격을 아직 겪진 않았지만,
수출 의존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빠르게 취하지 않은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그 지점에 있다.
7년 전, 아베 신조 총리는
현재 한국 경제에 필요한 노동시장 완화, 관료주의 타파, 스타트업 붐 촉진, 여성 권한 확대, 생산성 향상
등을 약속했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일본의 최대 수출 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아베는 경기 부양을 위해 또다시 1조달러를 쓰려 하고 있다.
'부채의 화폐화'는 근본적인 처방 안 돼
1930년대의 먹구름이 다시 내려오면서, 그 시기 일본 정책을 소환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부채의 화폐화'가 그것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부채를 매입해 절대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망령에 발을 내밀었다.
이는 오늘날의 성장 둔화와 치솟는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결코 현대 경제 모델이 될 수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2013년 시 주석은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장의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투자하기 위한 노력에도,
그는 중국을 지배하는 국유 기업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 너무도 느렸다.
유럽도 '일본화' 위험에 직면해 있다.
정치인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 눈에 보이는 병의 징후들만 다루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은 10여년간 시장에 현금을 투입했지만,
정치인들은 그 유동성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부채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적인 성장을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없었다.
경제 부양만큼, 스타트업과 혁신 위한 공간 중요
한국에는 일본의 운명을 피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추락하는 경제를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과 혁신을 위한 공간을 더 만드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기업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보호하는 것보다 밑바닥부터 에너지를 일으키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한국의 문제들을 해결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
코로나19에 유능하게 대응한 덕분에 지지율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쓸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
그가 더 신속하고 담대하게 움직인다면, 일본보다 더 활기찬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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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7/2020052700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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