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일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자 정부 여당의 지도자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 '찬미가'를 불러대고 있다.
이광재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의 태종에 비견했다.
누가 뭐래도 현대사에서 태종과 비슷한 정치 행적을 보인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지난 8일 법정에 재판을 받으러 출석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차를
지지자라는 사람들이 물티슈로 닦아주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돼 큰 충격을 줬다.
아무리 재판 중이라지만 조 전 장관은 가족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된 인물이다. 하나는 우리의 입시 제도 근간을 뒤흔든 부패고 하나는 자기편을 감싸다 들통난 권력형 비리다.
지지자라는 사람들은
"조 장관 마음에 먼지가 쌓인 게 아니라 검찰이 먼지를 씌운 것"
"검찰이 씌운 먼지를 국민이 닦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 또한 여당 압승이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병리적 초상화일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차 갖고도 이러니 실물을 만나면 아마 머리카락으로 (조 전 장관) 발을 닦아 드릴 듯"이라고 촌평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행태를 연옹지치(吮癰舐痔)라고 했다.
연옹이란 악성 종기에서 나는 고름을 빨아준다는 뜻이고
지치란 치질의 환부를 핥아준다는 뜻이다.
권력자를 향한 아부라면 무소부지(無所不至), 즉 못할 짓이 없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결코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되는 짓이다.
실록에서 간신이 아첨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마다
이 말을 자주 쓰길래
필자는 표현이 많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저 상투적 표현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후
여권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아첨 행렬과 일부 지지자의 낯뜨거운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참, 적어도 '태종실록'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태종은 이런 저질스러운 아첨을 용납하는 군주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