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광일의 입]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colorprom 2020. 5. 7. 14:42

[김광일의 입] 문-문 “검찰개혁을 못해 노 전 대통령 돌아가셨다”


             
입력 2020.05.06 18:00


중앙일보가 이달 말 임기가 종료되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인터뷰했다.
상당히 긴 장문의 인터뷰인데 그중 몇 개 요점을 뽑아내면 이렇다.

첫째. 의장은 "여당이 비례위성 정당을 만든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야당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여당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20대 국회의 선거 개혁은 "완전 실패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당시 여당은 ‘공수처법’을 얻어내기 위해 군소 범여권 정당에게 ‘선거법’을 내어준 것이다.
그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문희상 의장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양강(兩强) 체제’를 바꾸려다 오히려 ‘양강 체제’를 강화하고 말았다.
게다가 ‘4+1 협의체’ 같은 일종의 야합 과정을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을 줄 알았던 정의당
총선에서 쫄딱 망하고 말았다.

준연동형 비례선거법이 저렇게 된 데에는 의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장은 자신의 책임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마치 여당 지도부를 탓하듯 나무라는 발언을 했다.

총선여당 승리로 끝난 뒤
여당 소속 국회의장이 비례위성 정당에 대해
‘야당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여당은 절대 해선 안 될 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순간
한국 속담이 생각났다. "고양이, 쥐 생각한다."

문희상 의장은 또 이런 말을 했다.
" ‘윤 석열 때려잡으려고 (공수처를) 만든 게 아니다’는 걸 대내외에 천명하면
그 순간 전체의 신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공수처의 성패는 초대 공수처장을 어떻게 임명하느냐에 달렸다."
"전폭적으로 (진보·보수) 양쪽의 신뢰를 받을 사람으로 인선을 잘해야 한다."

얼핏 들으면 옳은 말 같다.
그러나 뭔가를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부인하거나, 안 해도 될 말을 하게 될 경우,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때려잡으려고 공수처 만든 게 아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기관장에게 ‘때려잡는다’는 말은 너무 과격하고 품위를 잃은 말이 아닌가.
본질적인 핵심을 따져본다면, 청와대 출신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당선자가 되풀이 말하듯이,
여권 내부에서는 공수처만 출범하면
곧바로 윤석열 총장을 맨 처음 단두대에 세우겠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라도 한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인가.
한국 속담이 생각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셋째. 문희상 의장은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인물평을 했다.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을 임명하면서
‘내 말이 맞을 테니 이건 내 말 들으세요.’ 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눈초리가 너무 선하다, 백면서생인데 독기를 갖고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라고 반대했다.
그랬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람은 내가 나이 어려도 말을 못 놔요, 미래 예측을 해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의장이 대통령을 50대 50으로 평가한 것 같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란 표현은, 흰 얼굴로 글줄만 읽어서 세상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한다.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서 문 대통령의 ‘미래 예측’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평가했다.

그 다음 대목이 더 중요하다. 기자가 의장에게 물었다.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은 어떠한가.’
그러자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검찰개혁을 성공 못해서 결과적으로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자책감이 있다.
나도 절절히 느끼는 거다.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이 부분이 바로 깊게 음미해볼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결국 ‘박연차 때문인가 검찰 때문인가?’
이 물음에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서 대답하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성격이 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세상을 뜬 박연차태광실업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에게 수백만 달러 뇌물을 건넨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문희상 의장은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못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 는 식으로 거침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희상 의장에게 정중하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개혁이라는 것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뜻인가.

전 대통령의 죽음이 박연차 회장이나 뇌물 수수 때문이 아니라,
지금 정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당시 검찰의 ‘강압수사, 월권수사’,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명박 대통령 정부 때문이었다고 보고
그에 대한 복수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는 뜻인가.

문재인 정부의 ‘청산(淸算)과 개혁(改革)’은 복수심 때문인가.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검찰개혁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명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만큼
문희상 의장의 추가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박연차 회장의 뇌물 때문인가, 검찰 때문인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6/20200506035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