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4
[명상칼럼] 공자는 왜 임종 직전에 침묵만 지켰을까
#풍경 하나
허주 선사(1805~1888)는 전라도 순천 송광사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백(講伯)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말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불언무위(不言無爲) 설법을 했습니다.
허주 선사는 당대에 인기가 퍽 많았습니다.
가끔 서울에 가면 신도들이 몰려들어서 앞다투어 ‘공양 대접’ 경쟁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 걸까요.
어떤 날은 허주선사를 위한 한 끼 밥상이 무려 열 개나 차려지기도 했답니다.
주위 스님들이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그럼 허주 선사는 밥상 하나에서 밥 한 숟갈씩 발우에 덜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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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허주 선사가 화계사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뜰에는 수백 명의 청중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상에 오른 허주 선사는 한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나 법상을 내려왔습니다.
그게 설법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청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이고, ‘허주의 침묵’에 담긴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날로부터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허주 선사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법상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허주 선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리는 언어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진 자리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게는 눈곱만큼도 허물이 없다.”
법문을 들으러 온 청중 앞에서 허주 선사는 침묵만 지켰습니다.
그러고도 “내게는 아무런 허물(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침묵 설법’에는 대체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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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둘
신도들에게 허주 선사의 ‘침묵 설법’은 당혹스러웠습니다.
허주 선사는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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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본 허주 선사가 드디어 입을 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말 끝에 허주 선사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매앰! 매앰!” 매미 울음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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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셋
공자는 말년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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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사람들은 왈가왈부합니다.
공자가 유언을 남겼느냐, 아니면 유언을 남기지 않았느냐. 이걸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은 허주 선사의 설법과도 통합니다.
법상에서 침묵만 지킨 허주 선사는 과연 법문을 했느냐, 아니면 법문을 하지 않았느냐.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유언을 남겼을까요, 남기지 않았을까요?
허주 선사는 설법을 한 걸까요, 하지 않은 걸까요?
뭐라고요. 공자가 유언을 남겼다고요? 그럼 그 유언은 대체 어떤 걸까요.
눈을 감고 가만히 궁리해 보세요. 공자의 유언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공자의 침묵’이라고 말합니다.
‘침묵=유언’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다시 들여다보세요. 공자가 침묵할 때 누가 말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창밖의 새가 울었습니다.
처마 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위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와 함께 구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달이 뜨고,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공자의 유언은 ‘침묵’이 아니라 ‘침묵 너머’였습니다.
공자가 침묵할 때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우주의 설법’이 바로 공자의 유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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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자'에서 배우 저우룬파가 공자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공자의 삶을 담았다.
#풍경 넷
허주 선사의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지겨워서 꼼지락거리는 동작,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는 일도 '부처의 나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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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어렵기만 할까요. 우주의 설법을 듣는 일 말입니다.
먼저 침묵한 뒤, 내가 귀를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사람을 향해서든, 자연을 향해서든, 우주를 향해서든, 아니면 나 자신을 향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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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공자는 왜 임종 직전에 침묵만 지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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