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09 03:15
"자유조선 정체는 미국이 찔렀을 거야."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이 스페인의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해 3월,
미국의 한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가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돼
스페인과 미국 언론들이 자유조선의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과 조직원의 신원을 잇달아 보도하는 데
의문을 품었다.
평소 홍씨 등은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였기 때문에 신원이 쉽게 드러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홍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이라며
"사건 직후 홍씨가 미국으로 온 걸로 볼 때 미국에서 정보가 유출됐을 수 있다"고 했다.
홍씨는 20대 때부터 북한 인권 활동을 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홍씨가 이끄는 자유조선이 '선을 넘는' 작전을 벌이자, 미국이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인권 단체 관계자는 이 같은 현실 때문에
"우리끼리는 '미국 놈 믿지 말고 한국 놈에게 속지 말자'는 말을 한다"고 했다.
이 예감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현지 시각)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비밀 조직의 내막'이란
자유조선 관련 기사에서 홍씨의 '결정적 오판'에 대해 설명했다.
홍씨는 스페인의 북한 대사관을 습격하고 난 뒤 미국으로 돌아와 연방수사국(FBI)과 면담 일정을 잡았다. 홍씨는 FBI 요원들에게 자신이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서 가지고 나온 USB와 각종 서류를 넘겼다.
홍씨는 지난 2011년 미국 정부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홍씨는 지난 2011년 미국 정부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카다피 정권 몰락 이후 혼란을 겪고 있던 리비아로 들어가 혁명정부 설립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긴밀히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이번에도 자신이 미국의 국익에 맞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FBI는 냉정했다.
WSJ에 따르면 FBI는 외국에서 북한 대사관을 습격하는 대담한 작전을 하는 단체와 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대사관 침입 사건을 수사 중인 스페인 당국에 홍씨의 신원을 오히려 누설했다.
홍씨가 FBI에 전달한 자료는 그대로 스페인으로 보냈다.
이를 단서로 스페인 당국은 CCTV 화면 등을 종합해 자유조선 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냈고,
홍씨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자유조선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국제사회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미국과 스페인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한반도의 통일을 반길 것이다.
그러나 그 수단과 방법, 전술이 자국에 피해를 줄 때는 혈맹인 미국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북한과 일부 좌파의 '우리 민족끼리'는 망상이지만,
미국이 무조건 '모든 단체의 모든 행동'을 지원할 것이란 기대도 환상이다.
통일의 출발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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