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그는 내가 중학생 때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였고 향가 연구로 일본과 한국학계에서 인정받는 수재였다.
강연을 끝낸 양 선생이 "나 빨리 갈 데가 있으니까 강사료만 달라"고 재촉했다.
후배인 사학과 이 교수가 양 선생 옆집에 살았다.
한번은 추운 날씬데 선생이 대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마누라가 뿔이 났어" "왜요?" "강사료로 한잔했거든"
"그러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쉬세요." "아냐, 그랬다간 오늘 못 들어간다고…."
그래서 걱정하면서도 웃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다른 얘기다. 안병욱 선생이 나에게 "양주동 선생이 젊어서 유도선수였어요?"라고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내가 잘 아는데"
"아니야. 어디서 강연을 하면서 '내가 이래 보여도 젊었을 때는 유도가 4단이었어' 라고 했대요"라는 것이다. 후에 내가 양 선생에게 "선생님, 대학생 때 유도를 했어요?" 물었다.
"내가 유도는 무슨 유도를 해?"라며 놀라는 것이다.
"학생들한테 강연을 하면서 그랬다면서요?" 내가 재차 물었다.
선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오~ 내가 한번 후라이 까본 거지(허풍이었다는 뜻이다).
그걸 믿는 학생들이 바보지. 내가 언제 유도를 했겠어"라면서 "김 선생도 그렇게 믿었어?"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안병욱 선생에게서 들었다고 했더니,
"안 교수는 내 대학 후배인데 그런 걸 물어봐"라면서 '안 교수가 철이 없구먼'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 양 박사를 일본에서는 일본학자를 앞지른 향가 연구가로 높이 평가해 주었다.
왜 그런지 나는 양 선생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양 선생이 제자 격인 나를 믿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