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발 입국자 제한 이후에도 韓은 문 열어놓자 의혹 퍼져
한국은 이제 '험지' 아닌 '사지'… 고립 상황 벗어나는 데 시간 걸릴 것
지난달 말 귀국하기 위해 워싱턴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서울행 게이트부터는 달랐다.
항공사 직원과 한국행 승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지난달 초 미국 동부에서 기차를 탄 일이 있다.
좌석을 정해주지 않아 승객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 앉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내 옆자리는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기피 분위기가 생긴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한 사태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미국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이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워싱턴 지인들은 "중국 식당 등 중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엔 가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해주었다.
한국·중국 등 아시아 출장이나 여행 계획을 연기·취소한 사람도 많았다.
유학생 중에도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한국행을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귀국 준비를 하는 동안 주변에서 마스크를 꼭 사 가라기에 근처 약국에 들러봤지만 마스크는 구경도 못했다.
지난달 중순 한국의 확진자 수가 수십 명 수준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워싱턴에서 한국에 대해 걱정하는사람은 별로 없었다.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해선 두려워했지만
한국에 대해선 '늘 그렇듯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선제 대응하는 것 아니냐'고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중국발 입국자들의 미국 입국 제한 결정을 내린 직후
이미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시작된 것 같다.
미국이 중국에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한국은 문을 열어놓은 채로 두자,
태평양 건너에선 한국이 중국과 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지도에서 중국이 빨간색이라면
중국에 문 열어놓은 한국은 아무리 방역 체계 수준이 높고 의료 인프라 수준이 선진적이어도
분홍이나 보라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김정은이 일찌감치 북·중 국경을 폐쇄한 이후에는 도대체 문재인 정부는 무엇이 두려워
국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워싱턴에서 퍼져 나갔다.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은 지난달 이미 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취한 것과 같은 입국 금지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이 방안을 전면 실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왔다.
대구를 여행금지 권고지역으로 지정했고, 미국행 한국인에 대한 사전 체온 검사를 시작했다.
뉴욕 주지사는 최근 한국 등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생국에 유학중인 일부 교수와 학생들을
미국으로 귀국 조치 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난 몇 주 사이에 세계 100국 가까운 나라가 한국발 방문객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데 어떤 다른 고려도 우선하지 않는
가혹한 국제사회의 인심을 확인하고 있다.
외국에선 "한국이 이제 '험지'가 아니라 '사지'가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국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나라 밖에선 한국과 한국인 포비아가 퍼져 나가고 있다.
안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느라 집 밖으로 못 나가고,
밖에선 다른 나라가 '한국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나라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기피 국가가 돼 고립된 상황을 벗어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 포비아를 잠재우는 길은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우리 앞에 멀고 험한 길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