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21 03:1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2/20/2020022004069_0.jpg)
에도 말기 일본에는 콜레라가 유행하여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공포의 괴질 앞에서 재래 지식은 무용지물이었다.
메이지 신정부에 가담한 의사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齋·1838 ~1902)는
1871년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일원으로 구미(歐美) 일대를 시찰한다.
방문지 의료기관에서 나가요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hygiene'이라는 단어였다.
'바른 의료 지식으로 시민의 생명과 생활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접한 그는
이 생소한 단어가 일본의 근대화가 지향해야 할 바를 상징하는 키워드임을 직감한다.
1874년 문부성 의무국장에 취임한 나가요는 'hygiene' 개념의 일본 도입에 골몰한다.
1874년 문부성 의무국장에 취임한 나가요는 'hygiene' 개념의 일본 도입에 골몰한다.
그는 전통 의학에서 사용하는 양생(養生) 대신 '위생(衛生)'이라는 말을 고안함으로써
인식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듬해 나가요는 내무성 위생국 초대 국장에 취임하여 질병 대책을
체내 독을 제거하고 영양을 보충한다는 보양(保養) 개념과 분리하고,
위생을 국가행정 영역으로 편입하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건강, 보건, 방역 등의 새로운 개념과 말이 줄을 이었다.
전통 지식 체계에 위생 관념이 희박했던 것은
전통 지식 체계에 위생 관념이 희박했던 것은
무엇이 질병을 야기하는지 정확한 지식이 없고,
질병 관리를 위해 개인과 사회(국가) 간 권리·의무를 조화시키는 공공(公共) 의료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新)의료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청결·소독 등 개인위생 신지식이 보급되고,
상하수도·주거·식품 등 생활환경 개선에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공공
위생 규범이 도입되자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 피해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근대화란 무엇인가? 근대국가란 무엇인가? 왜 근대화를 해야 하는가?
위생이 가져다준 눈앞의 삶의 질 개선은 어떠한 추상적 설명보다도 일본인들의 그러한 의문에
실천적 답을 제시해 주었다.
올바른 지식으로 더 나아짐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위생을 통해 일본인들이 깨달은 근대화의 요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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