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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기업인은 목숨 걸고 일한다

colorprom 2020. 2. 11. 13:53

[기자의 시각] 기업인은 목숨 걸고 일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2.11 03:14

오로라 산업2부 기자
오로라 산업2부 기자

"중국이 폐렴으로 난리 난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저 사람 혼자 보낼 수 있겠어요."

9일 오후 김포국제공항 2층 출국장에서 만난 정경숙(55)씨는 먼발치에서 지인의 배웅을 받고 있는
남편 최경(59) 코스맥스 차이나 법인장(부회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원래 최 법인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9일까지 일시 중단 상태였던 현지 공장의 재가동을 위해 홀로 출국할 생각이었지만, 함께 가겠다는 아내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정씨는 "공장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멈춰 섰던 만큼, 남편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에 빠져 살 게 뻔하다"며 "바쁘다고 집 안 소독이나 환기를 제대로 안 할 텐데, 내가 가서 챙겨주는 게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최 법인장은 코스맥스가 중국에 처음으로 진출한 2004년부터 중국 업무를 담당했지만,
지금까지 부부가 함께 상하이에서 생활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는 "십수 년을 혼자 출국했는데, 전쟁터가 돼버린 곳에 아내와 같이 나간다니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부부의 두 딸은 이날 아침까지도 "정말 안 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렸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도 정씨에게 "너라도 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부부는 "마음속으론 겁이 났다. 그러나 책임감 하나로 중국으로 출국하는 직원만 20여명인데,
어떻게 우리만 안 가겠느냐"고 대답했다.

이들이라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최 법인장은 "당장 현지에서는 마스크는 물론 식자재 공급도 불안하다"며
"전투하러 나가는 심정으로 짐을 쌌다"고 말했다.
이날 부부는 고추장, 김치, 손 소독제 등을 가득 챙긴 20㎏짜리 이민 가방 4개를 짐으로 보냈다.
최 법인장은 만일을 대비해 혈압약을 평소의 두 배로 처방받아 챙겼다.
사태가 잦아들기 전엔 최소 수개월은 한국으로 못 돌아오고 중국에 갇힐 각오를 한 것이다.

이날 김포공항 출국장은 '코로나 포비아' 영향으로 텅 빈 상태였다.
최 법인장은 "아마 이 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기업인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LG전자·아모레퍼시픽 등 기업의 수많은 주재원은 이날 전후로 속속 공장으로 복귀했다.
한 대기업 주재원은 "다들 어떻게든 이 난관을 버텨내자는 비장함을 갖고 현장에 갔다"며
"경제 일선인 기업이 힘들어지면 나라 경제도 크게 휘청거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로 닮아 보이는 부부의 얼굴은 단호했다.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그들의 표정을 본 뒤,
문득 '어떻게 저렇게 흔쾌히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 중견 기업인은 "이것저것 계산한다면 불가능한 선택"이라며
"누군가는 최전선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기업인을 현장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부부 같은 '평범한 영웅'들에게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0/20200210037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