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한창기와 오주석 (이광표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20. 2. 4. 15:04


    

[일사일언] 두 명의 사내


조선일보
                         
  • 이광표 서원대 교수
             
입력 2020.02.04 03:05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사내 한 명의 이름은 한창기(1936~1997).
70~80년대를 풍미했던 잡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발행했던 사람이다.
두 잡지는 시대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이들을 통해 한국 잡지는 내용과 형식에서 한 단계 격상됐다.
전통, 우리 것, 무지렁이 민중, 한글과 가로쓰기, 잡지 디자인, 판소리, 민화
당시 외면당하던 것들을 한창기는 잡지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문판 세일즈맨이었다.
가난하던 1960년대, 놀랍게도 그걸 팔아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잡지를 만들고 전통의 미학을 보듬었다.
한창기는 1997년 6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몇 년 뒤 잡지는 종간됐고, 그의 문화재 컬렉션 6000여 점은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주변에선 그의 컬렉션을 보관·전시할 박물관을 만들자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견 탓에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곤 2011년 고향 벌교에서 가까운 순천 낙안읍성'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생겼다.

그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구례김무규(단소 명인) 고택도 박물관 옆으로 옮겨왔다.
이 고택은 영화 '서편제'를 찍은 곳이다.

또 한 사내는 오주석(1956~2005)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감식안으로 우리 옛 그림을 흥미롭고 깊이 있게 전해주었던 사람이다.
김홍도와 호흡하기 위해 김홍도처럼 거문고를 배워 연주했고,
정선을 이해하기 위해 정선처럼 '주역(周易)'을 공부했다.

[일사일언] 두 명의 사내
오주석이 남긴 책 몇 권은 여전히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책들은 한동안 출판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최근 문제가 해결돼 다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2018년엔 고향 수원화성행궁'오주석의 서재'가 문을 열었다.

한창기는 2월 3일에, 오주석은 2월 5일에 생을 마쳤다.
이들이 이승에서 서로 만나 의기투합 한번 할 수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두 사내의 흔적이 그리울 때, 나는 종종 벌교순천, 수원에 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3/20200203040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