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1.17 03:01 | 수정 2020.01.17 13:47
정성호… TV조선 예능 '끝까지 간다'서
中 공안·밀렵꾼·강도 피해가며 열두 살 소년의 탈북 과정 동행
"생사의 길 개척하는 아이들,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 돼"
개그맨 정성호(46)는 최근 극한의 예능 프로그램을 한 편 촬영했다.
동남아 어느 지역의 울창한 산림지대에서 벌레와 뱀이 우글거리는 숲을 헤매고 다녔지만,
여느 방송사에서 볼 수 있는 정글 생존형 예능은 아니었다.
결코 웃을 수 없는 내용.
TV조선 예능 프로 '끝까지 간다'에서 탈북 소년 이주성(12)군을 탈북시키는 코너인 '사선에서'에 참여한
그를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비밀 탈북 루트를 따라 들어가 백두산에서 동남아까지 중국을 가로질러 온 소년을 만나고,
그를 다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는 역할을 맡았다.
새로운 포맷의 예능을 시도한 것인데, 평일 심야에 3% 가까운 시청률이 나와 반전을 주고 있다.
"제가 돌아오면 예능, 못 돌아오면 다큐가 될 거라고 했어요. 결국 훌륭한 예능이라는 것을 증명한 거죠. 하하."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뭔가에 홀린 듯 참여하고 말았다.
"제작진을 만났는데 대뜸 주성이 영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화면 속 작은 아이가 먼저 탈북한 엄마, 아빠 만나려 국경을 넘었다는 말에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 역시 자녀 4명을 둔 다둥이 아빠이기도 하다.
방송에선 방문국이 어디인지, 어느 지역을 다니는지 일절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지나는 길이 발각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말해선 안 된다는 것.
그는 "방송에선 단번에 길을 찾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만나기로 한 장소가 수시로 바뀌면서
'이러다 아이를 못 만나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한 순간이 더 많았다"고 했다.
가족들에게는 편한 촬영이라고 했지만 도착한 곳은 스마트폰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오지.
공안뿐 아니라 밀렵꾼과 강도가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었다.
촬영보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주위에 사람이라곤 우리 말고는 보이지도 않는데 현지인 만나면 관광객 행세를 해야 했어요.
그때마다 등 뒤로 땀이 고였어요."
실제 잡힐 뻔한 적도 있었다.
"원래 검문이 없는 곳인데 검문소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냥 내려서 뛰었죠."
그 후로도 "숨어" "고개 숙여" "뛰어" 같은 긴박한 상황이 수시로 이어졌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탈북 청소년들과 입을 맞춰 '고향의 봄'을 합창하기도 했다.
"북에서 온 아이들과 같은 노래를 부르니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딱 알겠더라고요."
아이들은 틈날 때마다 "거기 가면 진짜로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습네까?" 하고 물었다.
그는 "같은 민족인데도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방송인으로서 더 성숙해진 느낌도 든다.
"제가 '종군기자'가 된 것 같았어요.
탈북 루트 취재는 해외 유명 방송사 기자들도 직접 동참하지는 않고 나중에 영상만 사 간다고 하더라고요.
방송 종사자로서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한 거죠."
목숨 걸고 자기 길을 개척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어떤 일을 목숨 걸고 해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방송을 찍으면서 그는 장성한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
방송에도 등장한 청년 탈북자들은 헤어질 때,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큰성(큰형)'이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해서 허락한 것.
정성호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 이탈 주민을 음지에서 돕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 많은 분이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까지 간다'는 TV조선에서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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