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기를 믿는 문화가 그들 관점에선 신기하게 보이는 듯했다.
일제가 한민족의 정기를 꺾기 위해 전국의 명산 꼭대기마다 말뚝을 박아놓았는데
나도 북에 있을 때 백두산의 정기를 받기 위해 여러 번 오른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백두산의 기를 받으려면 새벽에 등정해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봐야 한다고 한다.
기운을 받으려고 가는 거지만 동료에게는 일출을 보러 갔다고만 한다.
공식적으로 북에서 백두산의 기는 오직 김씨 일가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운이 나쁘면 날씨가 흐려 여관에서 며칠씩 묵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도 "백두산의 기를 받기 위해 머무른다"고 말하면 큰일 난다.
그저 해 뜨는 모습을 구경하러 왔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백두산에 올라 동해에서 떠오른 해를 봤을 때의 감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늘의 기가 내 몸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한국에 와서 보니 백두산 정기에 대한 해석이 조금 달랐다.
한국의 지인들은 백두산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타고 흘러내려 오면서 더 강해진 기운이 빠져나올 때 받아야 한다고들 했다.
그러고 보니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매년 새해를 맞아 '백두산 호랑이 기 받기'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백두산의 기가 빠져나온다는 경남 산청의 왕산에서 기를 받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때문에 내가 운영하는 남북함께아카데미에서 대학생들을 데리고 산청에 내려간 적도 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산청 동의보감촌에 도착해 다시 산길을 오르니
사찰 형태의 건물 3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백두의 기가 빠져나간다는 이곳에 '대한민국 국새 전각전'도 있었다.
현 정부가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새'를 여기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 옆에 2층짜리 전통 목조건물이 있는데 백두산의 기를 받는 '등황전'이었다.
'봉황이 오른다'는 뜻의 등황전은 바로 뒤에 있는 해발
1100m 왕산의 정기를 받는 곳이라고 했다.
등황전 마당에 커다란 돌이 있었다.
거기에 한 사람씩 서서 눈을 감고 하늘로 손을 높이 쳐들어야 기가 몸에 와 닿는다고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나와 대학생들 차례가 왔다.
어쨌든 백두산에서도 정기를 받고, 백두대간을 거쳐 나온 기도 받았다.
이 정도면 통일될 그날까지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