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선상 반란

colorprom 2019. 11. 9. 15:28


[만물상] 선상 반란


조선일보
                         
            
입력 2019.11.09 03:06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선장에겐 독재적 권한이 주어진다. 질서 유지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도를 넘는 폭력도 횡행한다.
그 경우 선원들은 반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파업을 뜻하는 '스트라이크'도 선원들의 집단 반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해양 국가들은 선상 반란에 엄격했다.
해양법 유엔협약은 선상 반란을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모든 국가가 진압·처벌에 최대한 협력하라고 한다.

▶1789년 남태평양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이 벌어졌다.
반란 선원들은 배를 장악하고 함장 등을 보트에 태워 내쫓았다.
48일 표류 끝에 살아 돌아온 함장은 '불굴의 영웅'이 됐다.
영국 정부는 즉각 쾌속함을 반란자들이 머물던 타히티섬에 보내 기어코 체포해 교수대에 매달았다.
잔당들 추적은 1814년까지 계속됐다. 

[만물상] 선상 반란
▶1985년 중공군 어뢰정에서 대만 망명을 위한 함상 반란이 일어났다.
2명이 6명을 사살한 뒤 동쪽으로 향했다.
연료가 소진돼 흑산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우리 어선에 발견됐다.
해군이 긴급 출동했고, 어뢰정을 쫓아온 중공군 함대가 우리 영해를 넘었다.
일촉즉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중공은 사과를 하고 승조원들을 인계받았다.

두 사람은 대만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선상 반란에 자비 없다'는 국제법의 원칙이 적용됐다.

이 사건은 한·중 수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 남태평양 바다 위를 항해하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에서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선장의 폭력 등에 반발한 조선족 선원 여섯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해 11명을 차례로 살해했다.

칼과 도끼를 사용했고, 산 채로 상어가 출몰하는 바다에 던져 넣기도 했다.

실습 나온 고교생도 던져졌다.


1심 판결문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위'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살인범들의 항소심 변호인이었다.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했다.

여섯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다섯 명이 무기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주범도 특사를 통해 무기로 감형됐다.

북한 선원 2명이 가혹 행위에 불만을 품고 선장 등 16명을 살해하고 남으로 넘어왔다.

심야에 차례로 불러내 살해했다니 페스카마 선상 반란과 닮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들 2명은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고 북으로 추방했다.

아마도 즉각 처형될 것이다.


선상 반란에 대한 엄한 처벌 필요성, 사법 주권 포기 논란, 페스카마 사건과 다른 잣대 등 생각해볼 점이 많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8/2019110803960.html



페스카마호 사건때 변호사 문재인 "가해자도 품어줘야"


조선일보
                         
             
입력 2019.11.09 03:45

[北선원 추방으로 다시 회자되는 23년전 페스카마호 해상 살인]
한국인 선장 등 11명 죽인 조선족 6명 변호, 5명 무기징역 감형
16명 살해 탈북 주민 2명은 곧바로 北送… 과거와 달라진 모습

정부가 지난 7일 북한 선원 2명의 추방 이유로 든 '동해상 살인사건'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던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1996년)과 판박이다. 하지만 대응은 180도 달랐다. 정부는 16명을 살해한 북 선원 2명을 '흉악범'으로 규정해 귀순 의사에도 조사 사흘 만에 강제 북송했지만, 문 대통령은 11명을 죽인 페스카마호의 조선족 선원 6명을 끝까지 변호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특사(감형)까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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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전 페스카마호… 어제 북한으로 인계된 목선 -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은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1996년)과 최근 북한으로 추방된 선원 2명이 벌인 '해상 살인 사건'이 판박이처럼 닮았지만 결론은 180도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살인 혐의를 받던 조선족 선원 6명을 끝까지 변호했다. 왼쪽 사진은 사건 직후 부산해경항에 정박중인페스카마호(254t). '해상살인사건'이 벌어진 목선(17t)이 8일 우리 해군함정에 예인되고 있다(오른쪽사진). 목선은 이날 북측에 인계됐다. /조선일보DB·통일부
지난 1996년 8월 2일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254t)에서 엽기적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전재천(당시 38세)씨 등 조선족 6명이 선원 11명을 차례로 한 명씩 조타실로 유인해 흉기와 둔기로 잔인하게 죽이고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선장을 포함해 한국인 7명, 인도네시아인 3명, 조선족 1명이 희생됐다. 전씨 등은 일이 서툴다는 이유로 선장과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배에서 내려야 할 처지가 되자 '배를 탈취해 일본으로 밀입국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범행을 저질렀다. 선장과의 갈등이 살인 동기였다는 점, 한밤중 선원들을 1명씩 불러 '순차 살해'한 수법 등이 이번 북한 어선 살인 사건과 닮았다.

전씨 등 6명은 1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문 대통령은 이 사건을 2심부터 맡았다. '사상 최악의 선상 반란' 사건으로 국민적 비판 여론이 거셌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조선족 선원들이 어로 경험이 없어 일이 서툴고, 평등주의가 강한 중국식 사회주의 문화와 달라 멸시로 받아들이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 사건"이라는 취지로 변론했다.

부산고법은 1997년 4월 전씨를 제외한 5명에 대해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선고했고, 그해 7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유일한 사형수였던 전씨도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대통령 특별사면에 따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언론 인터뷰에서 "전씨도 특별감형으로 무기징역을 살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나의) 변론이 결실을 봤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조선족 사회의 부탁으로 이 사건을 맡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들이 경제적 여력이 안 돼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는 등 제대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선족 사회가 술렁이자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지낸 문 대통령이 이 사건을 수임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인터뷰에서 "조선족 동포들은 조국에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우리는 이들에 대해 은연중에 멸시나 깔보는 심리가 있다"며 "'페스카마15호' 사건의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재판 이후에도 부산 인권단체들과 함께 영치금을 넣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페스카마호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일은 2012년 대선 때도 논란이 됐다. 2015년 당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전재천씨의 사면 과정에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번 '북한 어선 살인 사건'은 23년 전 '페스카마호 살인 사건 변호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집권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녘 동포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고 조사 사흘 만에 북으로 쫓아냈다. 시민단체 한국자유민주정치회의는 8일 기자회견에서 "(페스카마호) 살인마들을 끝까지 변호해 24년째 우리 국민의 세금을 축내게 한 당사자가 북한 변호인으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살인 북송의 음모를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9/20191109002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