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가톨릭 성지를 가다] [1] 폴란드 쳉스토호바
폴란드 靈的 수도로 불리는 도시
聖畵 '검은 성모' 모신 수도원은 年 500만명이 찾는 최대 순례지
검은 얼굴에 그어진 두 줄 상처는 폴란드가 겪은 시련의 역사 상징
요즘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치유받기 위해 세계 곳곳서 몰려
성모 마리아를 희고 아름답게 표현한 대부분의 그림·조각과 달리 5~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야스나고라 수도원의 성모는 얼굴이 검고, 오른쪽 뺨에 두 줄기 깊은 상처가 눈 밑에서 목까지 길게 그어져 있다. 체코 출신 종교개혁가 얀 후스(1369~1415)의 파문과 처형에 반발해 전쟁을 일으킨 추종자들이 1430년 이 수도원에도 들이닥쳐 성모 그림을 내동댕이치고 칼로 그어 생긴 상처다. 이후 여러 화가가 상처를 없애려 했지만 기이하게도 지워지지 않았다.
지난 23일 새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례단이 찾아간 수도원 부속 성당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전 6시가 되자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제단 뒷벽에 걸린 성화를 덮은 가림막이 말려 올라갔다. 성모의 얼굴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무릎 꿇고 성호를 그었다. 한 여성은 주저앉더니 무릎걸음으로 성화 앞까지 기어가 두 손을 모았다. 성당 왼쪽 벽엔 위로를 구하는 이들이 걸어놓고 간 성물이 반짝였다. 오른쪽 벽엔 목발이 주렁주렁 걸렸다. 치유의 은사를 입은 이들이 놓고 간 것들이라고 했다.
검은 성모가 상처받은 이들만의 어머니였던 것은 아니다. 폴란드 가톨릭의 특징은 신앙이 호국(護國)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인들은 검은 성모가 겪은 고난을 그들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당한 민족적 시련과 동일시한다. 1655년 스웨덴이 쳐들어오자 폴란드인들은 성화 앞에서 기도하며 싸웠고, 이듬해 당시 국왕 얀 카지미에슈가 검은 성모를 폴란드의 모후이자 수호자로 선포했다. 이후 검은 성모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됐다. 1795년 폴란드가 열강의 분할 점령으로 지도에서 사라진 뒤엔 1918년 독립할 때까지 해방 투쟁의 수호자로 공경받았다.
같은 날 오후 폴란드 옛 수도 크라쿠프 시내에 있는 와기에브니키 자비의 성모 수녀원을 찾았다. 고(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2000년 밀레니엄 첫 성인품에 오른 '하느님 자비의 사도' 마리아 파우스티나(1905~1938) 수녀가 짧은 생애를 살고 선종한 곳이다. 생전의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환시(幻視)로 나타난 예수는 그녀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라는 임무를 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고통받던 많은 폴란드인이 찾아와 기도하면서 수녀원은 '자비의 신심'을 전파하는 성지로 거듭났다.
엘리사베트 수녀는 "폴란드에서 여아가 태어나면 이름을 파우스티나로 짓는 게 유행일 정도"라는 말로 폴란드 가톨릭 교회가 일으킨 새로운 바람을 자랑했다. 자비의 신심은 폴란드 밖으로도 확산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숨을 거둔 오후 3시가 되면 세계 곳곳의 가톨릭 교인들이 자비의 기도를 드린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정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5년 12월~2016년 11월을 자비의 특별희년으로 선포했다.
오늘날 유럽 각국 교회는 세속화 물결 속에 교세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 가톨릭 교회는 영성의 새로운 가치를 전파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신자가 총인구의 97.6%인 3706만4000여명이며 45개 교구에 주교가 157명(추기경 4명, 대주교 33명 포함)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