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다음 세대가 빚더미에 치이든, 빚 방석에 올라앉든 세금을 퍼붓잖아요.
상식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세입증가율은 점점 감소하는데,
역대 최대 증가율로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 박근혜 정부 공무원 연금개혁, 공공부문 구조개혁 등 성과로 세수 축적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어
⊙ 朴 정부가 모은 건강보험 적립금 20조원 펑펑 쓰는 文 정부… 5~6년 후엔 적립금 바닥
⊙ “탄핵 프레임하에서 過만 강조되는 박근혜, 경제정책에 대한 내공 상당”
⊙ 정부는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토대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박근혜 경제관
⊙ 문재인 정부 ‘344전략’의 황당함… 12년간 실질성장률 목표가 0.5%
⊙ “우린 집값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강남 사람 응징하는 정의로운 정부”
⊙ 여의도 복귀 물음에 “경제 무너지는데 혼자 편히 살지 않겠다”며 차기 총선 출마 선언
⊙ 박근혜 정부 공무원 연금개혁, 공공부문 구조개혁 등 성과로 세수 축적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어
⊙ 朴 정부가 모은 건강보험 적립금 20조원 펑펑 쓰는 文 정부… 5~6년 후엔 적립금 바닥
⊙ “탄핵 프레임하에서 過만 강조되는 박근혜, 경제정책에 대한 내공 상당”
⊙ 정부는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토대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박근혜 경제관
⊙ 문재인 정부 ‘344전략’의 황당함… 12년간 실질성장률 목표가 0.5%
⊙ “우린 집값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강남 사람 응징하는 정의로운 정부”
⊙ 여의도 복귀 물음에 “경제 무너지는데 혼자 편히 살지 않겠다”며 차기 총선 출마 선언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0.3%로 내려가 10여 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2분기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률에서 정부 기여분을 빼면 0.2%포인트 감소였다. 세금 퍼붓기를 제외하면 진짜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우리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해오던 수출은 9개월째 감소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의 80%를 담당하는 10대 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성과가 부진할 때마다 전(前) 정권 탓을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성장률이 2%대였고 (당시) 경제 활력을 잃었다.”(2018년 6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반면 문 대통령 재임 기간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는 모두 현 정권의 공이라고 한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7월 30일 ‘1인당 GDP(국내총생산), 진보 정부에서 더 증가’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 1인당 GDP는 연평균 1882달러 증가했다”며 “이명박 정부 258달러, 박근혜 정부 814달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정권별 경제 성적표를 비교하면서 연평균 성장률 대신 ‘1인당 GDP 증가액’을 근거로 든 것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성장률을 비교하면서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DP를 들고나온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가 간 소득이나 경제 규모를 비교할 때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환산하는 것이 맞지만, 한 나라의 성장률을 계산할 때는 그 나라 국민이 실제로 경제활동을 하는 자국 통화로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달러가 아닌 원화 기준으로 계산한 정권별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액은 노무현 정부 118만2000원, 이명박 정부 126만2000원, 박근혜 정부 132만5000원, 문재인 정부 135만원이다. 연평균 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7.2%, 이명박 정부 5.6%, 박근혜 정부 4.6%, 문재인 정부 4%다.
경제 침체는 ‘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DP로 문재인 정부 와서는 소득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노린 듯한 현 정부의 태도를 과거 정부의 경제 사령탑은 어떻게 바라볼까.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설계자인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났다.
박근혜는 축적 경제, 문재인은 비누 경제
― 정부·여당은 경제위기를 전 정부 탓이라고 합니다.
“정부·여당이 경제위기를 인정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부·여당은 경제위기란 말은 정부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만든 것이고, 실제로는 위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상황을 경제위기라고 인식한다면 이에 대응해서 각종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씀드릴게요. 우리 때는 ‘축적 경제’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는 ‘비누 경제’죠. 다음 정부, 다음 세대가 빚더미에 치이든, 빚 방석에 올라앉든 세금을 퍼붓잖아요. 상식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세입증가율은 점점 감소하는데, 역대 최대 증가율로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 박근혜 정부 때는 ‘축적 경제’라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축적 경제라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집권 초기에는 세수가 예상보다 적게 들어와 재정압박이 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재정지출은 적절하게 증가시키면서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고 부채를 감축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공무원연금 개혁이었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30년간 185조원의 세금을 절감했습니다.”
―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증원 정책을 펴고 있는데 말짱 도루묵 되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연금법에 의하면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통해 기여율과 지급률을 적절하게 조정하게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2014년 논의 시작)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낸 것도 연금법에 의해서였죠. 지금이 다시 공무원연금을 논의해야 할 때인데 이 정부는 움직임이 없네요. 현 정부는 공무원을 증원한다고 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연금 적립금에 플러스가 되지만, 연금을 지급할 때가 오면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에 닥칠 일이니까 현 정권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결국 모든 부담은 후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죠.”
실제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지난해부터 5년간 공무원을 17만4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증원된 공무원에게만 앞으로 급여 327조원, 연금 92조원이 지급된다.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임원 자리까지 낙하산이 독식
― 박근혜 정권 때는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공공기관 부채도 많이 줄였죠?
“네, 적극적인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및 기관별 부채감축계획 등을 통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했습니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2012년에 220%였는데, 2015년에는 183%로 37%포인트나 하락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사상 최초로 공공기관 전체 부채액도 감소세로 돌아섰고, 2015년에는 14조4000억원이 감소하였습니다. 공공부문의 부채는 기관 속성상 감소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는 없었던 일이지요. 2012년 공공기관 당기순이익이 2014년 11조4000억원, 2016년 15조4000억원으로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공공기관의 쓸데없는 자산을 매각하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얻은 결과였죠.”
―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당기순이익이 박근혜 정권 때의 15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공공기관 정책은 효율성과 공공성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효율성만 강조하여 공공기관 본연의 임무를 소홀하게 하거나, 공공성만 강조하여 공공기관을 돈 먹는 하마로 만들면 안 되지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제로정책’이란 단어는 멋있고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수익은 그대로인데, 사람을 많이 쓰면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어렵게 합의한 성과연봉제도 대부분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리 없지요.”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을 대폭 늘린 결과, 지난해 말 현재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전년 대비 3만6000명(10.5%) 급증해 38만30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늘어난 공공기관 직원만 2만4000명에 이른다. 인원 증가에 따라 공공기관 복리후생비 지출은 2년 만에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강 전 수석은 비전문가들이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까지 독식하는 것도 공공기관 수익 악화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솔직히 대대로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을 공공기관의 장으로 추천하는 관행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박근혜 정부 때는 나름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공이 전혀 다른 인사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장뿐만 아니라 이사 등 임원진까지도 내려보낸다더군요. 박근혜 정부 때는 해당 회사에서 커 온 분들이 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 대해 뭘 알아야 효율적 경영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문성 떨어지는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고액 연봉만 축내고 기업 내 물을 흐리고 있다면 실적이 나겠습니까. 공공기관 실적이 악화하면 결국 다 국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이 정부는 공공기관 정책에도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없고 정치만 있는 현 정부
―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말 중의 하나가 경쟁력입니다. 책임 있는 당국자 중에 우리 경쟁력이 약화하여 문제라거나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경쟁력의 이면에는 구조조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구조조정의 ‘구’자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누구나 하기 싫어 합니다. 누군가 직장을 잃고 피해를 봐야 하지 않습니까. 박근혜 정부라고 구조조정이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부실한 부분을 제거하고, 새살을 돋게 하는, 즉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어야만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리한 정책이 아님에도 실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인기에 연연하는 것이죠. 이 정부에는 경제는 없고 정치만 있는 것 같습니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어떻게 보세요.
“최저임금정책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100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상태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올라가면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용자는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이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10명 정도 된다고 하면 이분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챙겨야 할 10명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90명의 소득이 올라갔으니, 이들은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부 편이 됩니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임금을 받던 근로자들의 임금도 덩달아 올라가니 이들도 정부 편이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와 경영이 어려워진 영세 영업자의 눈물이 있지요.”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29% 인상했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작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사정이 어려운 고용주가 아예 일자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본인 임기 동안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하는 듯
― 박근혜 정권 때는 건강보험 적립금이 20조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던데요.
“네. 병원비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는 일이 없도록 4대 중증 등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 보장성을 강화했지만, 인구 고령화 등에 따라 향후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을 감안하여 가능한 한 재정을 알뜰하게 잘 관리했죠. 그런데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작년에 8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고, 향후 적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5~6년 후에는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둔 20조원의 적립금이 모두 없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돈을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쏟아붓고 있으니까요.”
건강보험공단이 9월 2일 발표한 ‘2019~2023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르면 급격한 고령화와 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올해 74.2%인 건강보험공단 부채비율이 2023년엔 132.9%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저축을 너무 잘해줘서, 현 정부가 돈을 펑펑 쓰는 것 같네요.
“우리는 후대를 위해서 축적 경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후대는 생각 안 하고 펑펑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닳아 없어지는 비누 경제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강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발표하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는 안 올린다는 식의 답을 내놨죠. 상식적으로 한전이 최근 조 단위의 영업 손실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까지 안 올린다는 말도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치죠. 근데 그다음 연도부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에 끝나지만, 대한민국과 국민은 계속 살아가지 않습니까. 현 정부는 후대가 안중에 없는 듯합니다.”
박근혜, 경제 내공 상당
박근혜 정권 때는 남유럽 재정 위기와 대규모 세수 결손이 있었지만, 마이너스 성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IMF(2015)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재정 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OECD(2015)도 우리나라를 재정건전성이 가장 우수한 국가 중 하나로 선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팀과 호흡을 잘 맞춰 경제를 잘 이끈 덕이다. 하지만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탄핵 프레임하에서 과(過)만 강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와 관련 걸핏하면 전 정부 탓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들의 공과는 있는 그대로 매우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고 온전한 전체로 평가해야 한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어땠습니까.
“경제 공부를 오래 하셨습니다. 2007년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니 그전부터 열심히 하셨겠죠. 당대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요.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 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 언제 놀랐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였습니다. 한국의 원화를 해외에서도 거래할 수 있는 ‘원화 국제화’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아, 그거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아닙니다’라고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공부를 많이 하셨구나’ 놀랐죠.”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탓에 환투기를 걱정해 역외에서 원화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시장을 허용하지 않고, 역외 선물환(NDF) 시장만 운용하고 있다. 물론 원화가 국제화되면 원화를 담보로 해외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원화 국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며 강 전 수석이 말을 이었다.
“후보 시절, 박 대통령과 경제학자 몇 명이 모여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시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 등 경제운용 방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계속 듣고 계시더니 마지막에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정부는 멍석을 깔아주란 말이죠’ 한마디로 정리가 됐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죠. 이게 박 대통령의 경제관이었습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직접 결정했나요.
“창조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정책, 대기업과 총수들의 불공정 행위를 제한하는 경제 민주화, 국민의 개별 복지 수요에 부합하는 맞춤형 복지정책 등의 중요 정책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내부 토론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을 하셨죠.”
창조 경제의 원래 이름은 ‘스마트 뉴딜’
― 사실 ‘창조 경제’의 개념이 모호하긴 합니다.
“창조 경제 원래 이름이 ‘스마트 뉴딜’입니다. IT 기술을 전 분야에 모두 접목시켜, 대한민국을 다시 업그레이드하자는 의미였습니다. 1930년대 미국이 선보였던 뉴딜정책의 ‘21세기 버전’이었던 것이죠. 1930년대 당시의 뉴딜이 토목공사를 대폭 확충해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스마트 뉴딜은 IT 기술을 산업의 전 분야에 접목시켜 새로운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었죠.”
― 확 와닿진 않네요.
“한마디로 전 분야에 IT를 접목시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군인이 밤새워 보초를 서지 않습니까. 근데 초정밀 스마트 기계로 보초를 서는 IT 기술을 개발하여 보초 임무에 적용하면 스마트 국방이 되는 것이죠. 관광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나 비용문제 등으로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를 직접 관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각종 IT 기술로 새롭게 탄생한 영화관에 앉아서 마치 폭포를 직접 방문한 것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스마트 관광이 될 겁니다. 당시는 IT 기술을 농업 분야에 적용하는 스마트 팜, 전력 분야에 적용하는 스마트 그리드, IT 기술을 적용하여 복지 대상자 선정과 전달 체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스마트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스마트 뉴딜을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이것이 창조 경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근데 박 대통령께서 당신은 ‘스마트 뉴딜’이란 이름이 좋은데, 일반 국민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게 아닐까 고민하셨죠. 또한 IT 기술만 강조하면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CT(문화콘텐츠기술) 등의 다른 과학기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고려도 하셨죠. 그래서 다양한 기술을 포함하는 뉴딜로 개념을 재정리하고, 창조 경제로 명명(命名)한 것입니다.”
― 결국 ‘창조 경제’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자는 정책이었네요.
“창조 경제의 콘셉트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부가가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이라는 원재료가 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재산은 결국 ‘사람’ 아닙니까. 창의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최대 경쟁력을 가진 IT 기술을 적용・활용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 전국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잘 운영되고 있나요.
“서울·경기·인천·제주·강원 등 전국 17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로 정부·지방자치단체·대기업이 힘을 모아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취지로 설립됐습니다. 외국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운영은 하는 것 같은데, 우리 때와는 좀 다르겠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센터 운영권을 넘겼다. 이후 센터 대부분은 예산 삭감에 따른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판은 그대로인데 정부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기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관심이 적다 보니 대기업들도 발을 빼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직접 창업기업을 가르치고 사업 DNA를 이식해주는 혁신센터의 장점이 퇴색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344 전략’의 황당함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선진국 진입)’, 박근혜 정부의 ‘474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을 비판했다. 대신 “과거 정부 같은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겠다”며 ‘착한 성장’을 내세웠다. 그랬던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경기 안산의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선포식’에서 ‘2030년 제조업 세계 4강, 국민소득 4만 달러(344전략)’를 내세웠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 시기를 정해 ‘국민소득 4만 달러’ 같은 성장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강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제시한 ‘344전략’에 대해 “황당한 전략”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께서 2030년도까지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작년(2018년)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3434달러였습니다. 4만 달러 달성까지 6566달러가 남은 셈이죠. 향후 12년 동안 6566달러만 오르면 2030년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달성하는데, 이는 연간 1.5%만 성장하면 가능한 겁니다. 연간 1.5% 성장은 사실상 성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계산을 누가 해줬는지 모르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실질가격이 아니라 경상가격으로 따집니다. 실질가격은 경상가격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을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간 1.5% 성장은 경상성장률을 의미합니다. 만약 물가상승률을 1%라고 가정하면 실질성장률이 0.5%가 됩니다. ‘문 대통령이 우리는 앞으로 12년간 실질성장률 목표가 0.5%입니다’라고 선포한 겁니다. 어떻게 목표를 이렇게 제시할 수 있습니까.”
― 수출액 규모 세계 6위인 한국이 2030년에 제조업 4강이 되려면 10년 안에 2단계를 도약해야 하는데 가능한가요.
“제조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2019년 6월 기준 수출은 102억85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억3000만 달러(16.6%) 줄었고,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30.8% 급감했다. 민간연구소들은 반도체의 하반기 수출도 작년보다 약 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와해하는 재정 원칙
― 보수 정부와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준수해온 재정 원칙이 지금 빠르게 와해되고 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경제가 안 좋을 땐 확정적 재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기조를 유지하면서, 규제 완화 등으로 기업 투자를 촉진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경제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 등 썩은 부분을 잘라내는 작업도 함께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병행했을 때 확장적 재정정책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노력은 하나도 안 하고 돈만 더 쓰겠다는 것이거든요. 몸에 암세포가 많은데, 그걸 도려내는 수술은 하지 않고 마약만 계속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이 지금 우리처럼 하다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습니다.”
― 문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 초반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보고에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복지를 명목으로 살포하는 현금은 ‘마약’과도 같습니다. 한번 현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 안 해도 나라에서 돈 준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국가가 서서히 병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국가채무비율을 40%로 지켜왔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령화나 통일 비용 등 향후 재정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우리 경제가 완전개방 경제라는 점, 한국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채무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겨서는 위험하기 때문이죠.”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15년 9월, 박근혜 정권의 재정 상황을 비판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인 40% 선을 넘었다”며 “새누리당 정권 8년,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책, 현금복지의 부작용을 세금으로 메우려다 보니 기존 입장도 뒤집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정책으론 집값 못 잡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여간 13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서울 집값이 안 잡히고 있다. 집값 안정 효과는 없고 ‘로또’만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2015년 사실상 폐지된 노무현 정권 시절의 분양가 상한제 정책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서울 신축 아파트의 집값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그러자 정부·여당은 부동산 급등과 관련해서도 전(前) 정권 책임론을 제기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박근혜 정권 시절 이뤄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결국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가계부채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밝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17차례, 박근혜 정부 때 13차례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은 대부분 ‘투기 조장 대책’이었다”며 “(이 때문에) 지금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강 전 수석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국민에게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호도”라고 했다.
“경제가 안 좋을 때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입니다. 첫째는 재정을 많이 쓰고, 둘째는 금리를 내리는 겁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이죠. 정부가 재정을 늘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늘어나서 경제가 활성화되죠. 세계의 모든 국가가 경제가 안 좋을 때 사용하는 정책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자금이 부동산 투자에 이용된다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용한 정책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경기가 안 좋으니까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렸잖아요. 그럼 본인들도 ‘국민에게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를 조성한 거 아닌가요. 이것도 내로남불인가요?”
―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문제점이 뭡니까.
“국민이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팔고 하는데 왜 그걸 정부가 규제하나요. 누가 강제로 사라 팔아라 했나요. 이런 거래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노무현 정권 때부터 무수히 많은 부동산 규제정책이 나왔는데, 이것 때문에 엉망이 된 겁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권 때와 똑같은 부동산정책을 펼치는 것이고요.”
― 규제로 서울 강남 집값을 잡지 못할 걸 알면서 왜 규제를 하는 겁니까.
“강남 집값이 왜 오를까요. 첫째, 물건이 괜찮아서겠죠. 교육환경 등 주변 여건이 좋죠. 두 번째는 강남 지역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매해 새롭게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매해 근로소득이 1억원 넘는 사람이 6만~7만명 생깁니다. 이들 중에는 새롭게 강남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은 별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급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지요. 그러니까 당연히 집값이 오르겠죠? 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당국자들이 이러한 간단한 수요공급의 경제원리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강남 집값 상승이 다른 지역 집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비경제적인 부분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고 짐작되기도 합니다. 이 정부 사람들이 이런 걸 알면서도 규제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강남 집값이 올라서 강남 사람들이 이익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집값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강남 사람들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정부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규제정책을 쓰는 것이죠.”
강 전 수석은 현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기조도 서울 집값, 특히 강남 집값 상승에 한몫한다고 했다.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하니까, 다시 강남으로 오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 사람=불로소득 수혜자’라는 선전 선동만 하지 말고, 서민 중산층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질 좋은 아파트를 많이 공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강남에 사는 인구는 우리 전체 인구의 3% 정도일 겁니다. 3%에 목매지 말고 97%의 안락한 주거환경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日과의 경제전쟁, 가장 걱정되는 것은 美의 태도
―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 같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건 트럼프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더는 크지 못하게 견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일본의 경우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이 자기네를 넘어서지 못하게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겁니다. 일본이 무섭게 달려들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없었어도, 일본은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겠네요.
“아무래도 대법원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 빌미를 준 것이 됐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줬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에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강 전 수석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국면에서 “미국이 방관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트럼프와 아베 사이에 이 문제(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양해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지소미아에 대해서는 미국이 안 된다고 압박하지만,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제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 우리 경제의 향방에 관한 모종의 추가적인 합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입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를 반일・토착왜구로 접근해 풀려고 하니…. 실력 차이를 인정할 부분은 냉정하게 인정하고 외교적으로 최선을 다해 푸는 게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를 우리 국민에게 ‘죽창 들고 의병 하세요’ 그러면 도대체 총을 든 관군은 없는 건가요?”
광란의 질주가 계속되면 그리스처럼 될 수도
―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의 현 상황이 10년 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와 비슷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우리 경제가 향후 그리스와 같은 파산 경제가 되는 모습은 꿈에라도 상상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과 같이 국가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재정지출에서 광란의 질주가 계속된다면 그리스와 같은 상황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스는 산업경쟁력이 거의 몰락한 상황에서 공무원 증원, 복지 과속 등으로 부채가 급증하면서 부도가 난 경우지 않습니까. 나라와 국민은 포퓰리즘을 쉽게 끊지 못합니다. 마약 중독과 같지요. 이대로 계속 가다간 한국 경제는 다 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비누가 될지도 모릅니다.”
― 자유한국당에 소위 ‘정책통’ ‘경제통’이 부족한데, 국회에 다시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까.
“우리 경제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저 혼자 편히 살고자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겁하지 않으려 합니다.”⊙
반면 문 대통령 재임 기간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는 모두 현 정권의 공이라고 한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7월 30일 ‘1인당 GDP(국내총생산), 진보 정부에서 더 증가’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 1인당 GDP는 연평균 1882달러 증가했다”며 “이명박 정부 258달러, 박근혜 정부 814달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정권별 경제 성적표를 비교하면서 연평균 성장률 대신 ‘1인당 GDP 증가액’을 근거로 든 것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성장률을 비교하면서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DP를 들고나온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가 간 소득이나 경제 규모를 비교할 때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환산하는 것이 맞지만, 한 나라의 성장률을 계산할 때는 그 나라 국민이 실제로 경제활동을 하는 자국 통화로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달러가 아닌 원화 기준으로 계산한 정권별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액은 노무현 정부 118만2000원, 이명박 정부 126만2000원, 박근혜 정부 132만5000원, 문재인 정부 135만원이다. 연평균 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7.2%, 이명박 정부 5.6%, 박근혜 정부 4.6%, 문재인 정부 4%다.
경제 침체는 ‘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DP로 문재인 정부 와서는 소득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노린 듯한 현 정부의 태도를 과거 정부의 경제 사령탑은 어떻게 바라볼까.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설계자인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났다.
박근혜는 축적 경제, 문재인은 비누 경제
2013년 1월 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때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강석훈 전 경제수석. |
“정부·여당이 경제위기를 인정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부·여당은 경제위기란 말은 정부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만든 것이고, 실제로는 위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상황을 경제위기라고 인식한다면 이에 대응해서 각종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씀드릴게요. 우리 때는 ‘축적 경제’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는 ‘비누 경제’죠. 다음 정부, 다음 세대가 빚더미에 치이든, 빚 방석에 올라앉든 세금을 퍼붓잖아요. 상식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세입증가율은 점점 감소하는데, 역대 최대 증가율로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 박근혜 정부 때는 ‘축적 경제’라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축적 경제라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집권 초기에는 세수가 예상보다 적게 들어와 재정압박이 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재정지출은 적절하게 증가시키면서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고 부채를 감축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공무원연금 개혁이었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30년간 185조원의 세금을 절감했습니다.”
―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증원 정책을 펴고 있는데 말짱 도루묵 되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연금법에 의하면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통해 기여율과 지급률을 적절하게 조정하게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2014년 논의 시작)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낸 것도 연금법에 의해서였죠. 지금이 다시 공무원연금을 논의해야 할 때인데 이 정부는 움직임이 없네요. 현 정부는 공무원을 증원한다고 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연금 적립금에 플러스가 되지만, 연금을 지급할 때가 오면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에 닥칠 일이니까 현 정권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결국 모든 부담은 후대가 짊어질 수밖에 없죠.”
실제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지난해부터 5년간 공무원을 17만4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증원된 공무원에게만 앞으로 급여 327조원, 연금 92조원이 지급된다.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임원 자리까지 낙하산이 독식
― 박근혜 정권 때는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공공기관 부채도 많이 줄였죠?
“네, 적극적인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및 기관별 부채감축계획 등을 통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했습니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2012년에 220%였는데, 2015년에는 183%로 37%포인트나 하락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사상 최초로 공공기관 전체 부채액도 감소세로 돌아섰고, 2015년에는 14조4000억원이 감소하였습니다. 공공부문의 부채는 기관 속성상 감소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는 없었던 일이지요. 2012년 공공기관 당기순이익이 2014년 11조4000억원, 2016년 15조4000억원으로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공공기관의 쓸데없는 자산을 매각하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얻은 결과였죠.”
―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당기순이익이 박근혜 정권 때의 15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공공기관 정책은 효율성과 공공성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효율성만 강조하여 공공기관 본연의 임무를 소홀하게 하거나, 공공성만 강조하여 공공기관을 돈 먹는 하마로 만들면 안 되지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제로정책’이란 단어는 멋있고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수익은 그대로인데, 사람을 많이 쓰면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어렵게 합의한 성과연봉제도 대부분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리 없지요.”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을 대폭 늘린 결과, 지난해 말 현재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전년 대비 3만6000명(10.5%) 급증해 38만30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늘어난 공공기관 직원만 2만4000명에 이른다. 인원 증가에 따라 공공기관 복리후생비 지출은 2년 만에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강 전 수석은 비전문가들이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까지 독식하는 것도 공공기관 수익 악화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솔직히 대대로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을 공공기관의 장으로 추천하는 관행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박근혜 정부 때는 나름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공이 전혀 다른 인사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장뿐만 아니라 이사 등 임원진까지도 내려보낸다더군요. 박근혜 정부 때는 해당 회사에서 커 온 분들이 임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회사에 대해 뭘 알아야 효율적 경영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문성 떨어지는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고액 연봉만 축내고 기업 내 물을 흐리고 있다면 실적이 나겠습니까. 공공기관 실적이 악화하면 결국 다 국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이 정부는 공공기관 정책에도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없고 정치만 있는 현 정부
―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말 중의 하나가 경쟁력입니다. 책임 있는 당국자 중에 우리 경쟁력이 약화하여 문제라거나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경쟁력의 이면에는 구조조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구조조정의 ‘구’자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누구나 하기 싫어 합니다. 누군가 직장을 잃고 피해를 봐야 하지 않습니까. 박근혜 정부라고 구조조정이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부실한 부분을 제거하고, 새살을 돋게 하는, 즉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어야만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리한 정책이 아님에도 실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인기에 연연하는 것이죠. 이 정부에는 경제는 없고 정치만 있는 것 같습니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어떻게 보세요.
“최저임금정책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100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상태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올라가면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용자는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이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10명 정도 된다고 하면 이분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챙겨야 할 10명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90명의 소득이 올라갔으니, 이들은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부 편이 됩니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임금을 받던 근로자들의 임금도 덩달아 올라가니 이들도 정부 편이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와 경영이 어려워진 영세 영업자의 눈물이 있지요.”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29% 인상했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작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6분기 연속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사정이 어려운 고용주가 아예 일자리를 줄였기 때문이다.
본인 임기 동안만 버티면 된다고 판단하는 듯
― 박근혜 정권 때는 건강보험 적립금이 20조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던데요.
“네. 병원비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는 일이 없도록 4대 중증 등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 보장성을 강화했지만, 인구 고령화 등에 따라 향후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을 감안하여 가능한 한 재정을 알뜰하게 잘 관리했죠. 그런데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작년에 8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고, 향후 적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5~6년 후에는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둔 20조원의 적립금이 모두 없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돈을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쏟아붓고 있으니까요.”
건강보험공단이 9월 2일 발표한 ‘2019~2023년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르면 급격한 고령화와 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올해 74.2%인 건강보험공단 부채비율이 2023년엔 132.9%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저축을 너무 잘해줘서, 현 정부가 돈을 펑펑 쓰는 것 같네요.
“우리는 후대를 위해서 축적 경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후대는 생각 안 하고 펑펑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닳아 없어지는 비누 경제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강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발표하자,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는 안 올린다는 식의 답을 내놨죠. 상식적으로 한전이 최근 조 단위의 영업 손실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까지 안 올린다는 말도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치죠. 근데 그다음 연도부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에 끝나지만, 대한민국과 국민은 계속 살아가지 않습니까. 현 정부는 후대가 안중에 없는 듯합니다.”
박근혜, 경제 내공 상당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6년 9월 6일 라오스 비엔티안 랜드마크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뒤쪽은 강석훈 전 경제수석. 강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경제 내공이 상당하다”고 했다. |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어땠습니까.
“경제 공부를 오래 하셨습니다. 2007년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니 그전부터 열심히 하셨겠죠. 당대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요.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 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 언제 놀랐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였습니다. 한국의 원화를 해외에서도 거래할 수 있는 ‘원화 국제화’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아, 그거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아닙니다’라고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공부를 많이 하셨구나’ 놀랐죠.”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탓에 환투기를 걱정해 역외에서 원화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시장을 허용하지 않고, 역외 선물환(NDF) 시장만 운용하고 있다. 물론 원화가 국제화되면 원화를 담보로 해외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원화 국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며 강 전 수석이 말을 이었다.
“후보 시절, 박 대통령과 경제학자 몇 명이 모여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시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 등 경제운용 방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계속 듣고 계시더니 마지막에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정부는 멍석을 깔아주란 말이죠’ 한마디로 정리가 됐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죠. 이게 박 대통령의 경제관이었습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직접 결정했나요.
“창조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정책, 대기업과 총수들의 불공정 행위를 제한하는 경제 민주화, 국민의 개별 복지 수요에 부합하는 맞춤형 복지정책 등의 중요 정책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내부 토론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을 하셨죠.”
창조 경제의 원래 이름은 ‘스마트 뉴딜’
― 사실 ‘창조 경제’의 개념이 모호하긴 합니다.
“창조 경제 원래 이름이 ‘스마트 뉴딜’입니다. IT 기술을 전 분야에 모두 접목시켜, 대한민국을 다시 업그레이드하자는 의미였습니다. 1930년대 미국이 선보였던 뉴딜정책의 ‘21세기 버전’이었던 것이죠. 1930년대 당시의 뉴딜이 토목공사를 대폭 확충해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스마트 뉴딜은 IT 기술을 산업의 전 분야에 접목시켜 새로운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었죠.”
― 확 와닿진 않네요.
“한마디로 전 분야에 IT를 접목시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군인이 밤새워 보초를 서지 않습니까. 근데 초정밀 스마트 기계로 보초를 서는 IT 기술을 개발하여 보초 임무에 적용하면 스마트 국방이 되는 것이죠. 관광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나 비용문제 등으로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를 직접 관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각종 IT 기술로 새롭게 탄생한 영화관에 앉아서 마치 폭포를 직접 방문한 것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스마트 관광이 될 겁니다. 당시는 IT 기술을 농업 분야에 적용하는 스마트 팜, 전력 분야에 적용하는 스마트 그리드, IT 기술을 적용하여 복지 대상자 선정과 전달 체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스마트 복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스마트 뉴딜을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일자리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이것이 창조 경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근데 박 대통령께서 당신은 ‘스마트 뉴딜’이란 이름이 좋은데, 일반 국민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게 아닐까 고민하셨죠. 또한 IT 기술만 강조하면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CT(문화콘텐츠기술) 등의 다른 과학기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고려도 하셨죠. 그래서 다양한 기술을 포함하는 뉴딜로 개념을 재정리하고, 창조 경제로 명명(命名)한 것입니다.”
― 결국 ‘창조 경제’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자는 정책이었네요.
“창조 경제의 콘셉트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부가가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이라는 원재료가 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재산은 결국 ‘사람’ 아닙니까. 창의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최대 경쟁력을 가진 IT 기술을 적용・활용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 전국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잘 운영되고 있나요.
“서울·경기·인천·제주·강원 등 전국 17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로 정부·지방자치단체·대기업이 힘을 모아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취지로 설립됐습니다. 외국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운영은 하는 것 같은데, 우리 때와는 좀 다르겠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센터 운영권을 넘겼다. 이후 센터 대부분은 예산 삭감에 따른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판은 그대로인데 정부의 관심이 적어지면서 기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관심이 적다 보니 대기업들도 발을 빼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직접 창업기업을 가르치고 사업 DNA를 이식해주는 혁신센터의 장점이 퇴색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344 전략’의 황당함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선진국 진입)’, 박근혜 정부의 ‘474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을 비판했다. 대신 “과거 정부 같은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겠다”며 ‘착한 성장’을 내세웠다. 그랬던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경기 안산의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열린 ‘제조업 르네상스 선포식’에서 ‘2030년 제조업 세계 4강, 국민소득 4만 달러(344전략)’를 내세웠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 시기를 정해 ‘국민소득 4만 달러’ 같은 성장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강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제시한 ‘344전략’에 대해 “황당한 전략”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께서 2030년도까지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작년(2018년)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3434달러였습니다. 4만 달러 달성까지 6566달러가 남은 셈이죠. 향후 12년 동안 6566달러만 오르면 2030년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달성하는데, 이는 연간 1.5%만 성장하면 가능한 겁니다. 연간 1.5% 성장은 사실상 성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계산을 누가 해줬는지 모르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실질가격이 아니라 경상가격으로 따집니다. 실질가격은 경상가격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을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간 1.5% 성장은 경상성장률을 의미합니다. 만약 물가상승률을 1%라고 가정하면 실질성장률이 0.5%가 됩니다. ‘문 대통령이 우리는 앞으로 12년간 실질성장률 목표가 0.5%입니다’라고 선포한 겁니다. 어떻게 목표를 이렇게 제시할 수 있습니까.”
― 수출액 규모 세계 6위인 한국이 2030년에 제조업 4강이 되려면 10년 안에 2단계를 도약해야 하는데 가능한가요.
“제조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입니다.”
2019년 6월 기준 수출은 102억85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억3000만 달러(16.6%) 줄었고,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30.8% 급감했다. 민간연구소들은 반도체의 하반기 수출도 작년보다 약 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와해하는 재정 원칙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 초반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보고에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박했다. |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경제가 안 좋을 땐 확정적 재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기조를 유지하면서, 규제 완화 등으로 기업 투자를 촉진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경제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 등 썩은 부분을 잘라내는 작업도 함께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병행했을 때 확장적 재정정책은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노력은 하나도 안 하고 돈만 더 쓰겠다는 것이거든요. 몸에 암세포가 많은데, 그걸 도려내는 수술은 하지 않고 마약만 계속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이 지금 우리처럼 하다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습니다.”
― 문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 초반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보고에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복지를 명목으로 살포하는 현금은 ‘마약’과도 같습니다. 한번 현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 안 해도 나라에서 돈 준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국가가 서서히 병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국가채무비율을 40%로 지켜왔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령화나 통일 비용 등 향후 재정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우리 경제가 완전개방 경제라는 점, 한국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채무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겨서는 위험하기 때문이죠.”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15년 9월, 박근혜 정권의 재정 상황을 비판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인 40% 선을 넘었다”며 “새누리당 정권 8년,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책, 현금복지의 부작용을 세금으로 메우려다 보니 기존 입장도 뒤집게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정책으론 집값 못 잡아
정부가 지난 8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규제안을 내놓음에도 신축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 아파트 값은 10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8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유리문에 아파트 매매, 전·월세 가격이 붙어 있다.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17차례, 박근혜 정부 때 13차례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은 대부분 ‘투기 조장 대책’이었다”며 “(이 때문에) 지금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강 전 수석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국민에게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호도”라고 했다.
“경제가 안 좋을 때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입니다. 첫째는 재정을 많이 쓰고, 둘째는 금리를 내리는 겁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이죠. 정부가 재정을 늘리면 소비가 늘어나고,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늘어나서 경제가 활성화되죠. 세계의 모든 국가가 경제가 안 좋을 때 사용하는 정책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자금이 부동산 투자에 이용된다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용한 정책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경기가 안 좋으니까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렸잖아요. 그럼 본인들도 ‘국민에게 빚내서 집 사자’는 분위기를 조성한 거 아닌가요. 이것도 내로남불인가요?”
―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문제점이 뭡니까.
“국민이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팔고 하는데 왜 그걸 정부가 규제하나요. 누가 강제로 사라 팔아라 했나요. 이런 거래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노무현 정권 때부터 무수히 많은 부동산 규제정책이 나왔는데, 이것 때문에 엉망이 된 겁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권 때와 똑같은 부동산정책을 펼치는 것이고요.”
― 규제로 서울 강남 집값을 잡지 못할 걸 알면서 왜 규제를 하는 겁니까.
“강남 집값이 왜 오를까요. 첫째, 물건이 괜찮아서겠죠. 교육환경 등 주변 여건이 좋죠. 두 번째는 강남 지역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매해 새롭게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매해 근로소득이 1억원 넘는 사람이 6만~7만명 생깁니다. 이들 중에는 새롭게 강남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은 별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급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지요. 그러니까 당연히 집값이 오르겠죠? 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당국자들이 이러한 간단한 수요공급의 경제원리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강남 집값 상승이 다른 지역 집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비경제적인 부분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고 짐작되기도 합니다. 이 정부 사람들이 이런 걸 알면서도 규제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강남 집값이 올라서 강남 사람들이 이익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집값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올리는 강남 사람들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정부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규제정책을 쓰는 것이죠.”
강 전 수석은 현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기조도 서울 집값, 특히 강남 집값 상승에 한몫한다고 했다.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하니까, 다시 강남으로 오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 사람=불로소득 수혜자’라는 선전 선동만 하지 말고, 서민 중산층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질 좋은 아파트를 많이 공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강남에 사는 인구는 우리 전체 인구의 3% 정도일 겁니다. 3%에 목매지 말고 97%의 안락한 주거환경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日과의 경제전쟁, 가장 걱정되는 것은 美의 태도
―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 같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건 트럼프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더는 크지 못하게 견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일본의 경우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이 자기네를 넘어서지 못하게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겁니다. 일본이 무섭게 달려들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없었어도, 일본은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겠네요.
“아무래도 대법원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 빌미를 준 것이 됐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줬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이에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강 전 수석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국면에서 “미국이 방관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트럼프와 아베 사이에 이 문제(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양해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지소미아에 대해서는 미국이 안 된다고 압박하지만,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제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 우리 경제의 향방에 관한 모종의 추가적인 합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입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를 반일・토착왜구로 접근해 풀려고 하니…. 실력 차이를 인정할 부분은 냉정하게 인정하고 외교적으로 최선을 다해 푸는 게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를 우리 국민에게 ‘죽창 들고 의병 하세요’ 그러면 도대체 총을 든 관군은 없는 건가요?”
광란의 질주가 계속되면 그리스처럼 될 수도
―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의 현 상황이 10년 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와 비슷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우리 경제가 향후 그리스와 같은 파산 경제가 되는 모습은 꿈에라도 상상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과 같이 국가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재정지출에서 광란의 질주가 계속된다면 그리스와 같은 상황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스는 산업경쟁력이 거의 몰락한 상황에서 공무원 증원, 복지 과속 등으로 부채가 급증하면서 부도가 난 경우지 않습니까. 나라와 국민은 포퓰리즘을 쉽게 끊지 못합니다. 마약 중독과 같지요. 이대로 계속 가다간 한국 경제는 다 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비누가 될지도 모릅니다.”
― 자유한국당에 소위 ‘정책통’ ‘경제통’이 부족한데, 국회에 다시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까.
“우리 경제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저 혼자 편히 살고자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겁하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