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9.24 03:11
제품 기술 핵심은 '감각 피드백'… 한 번 입 댄 과자, 봉지째 먹게해
디지털 세상 '무한 스크롤', 술 '첨잔'하듯 웹페이지 계속 이어져
기술 '신의 경지', 인간 뇌 '구석기 시대'… 컴퓨터의 인간 조종 가능
과자 봉지를 열고 몇 개만 먹으려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큰 봉지 하나를 혼자 다 먹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다.
그 과자가 나도 모르게 다 먹어치울 만큼 맛있는 과자였을까?
그렇게 맛있는 과자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과자를 만드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알고 있다.
바로 사람들이 '멈추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
미국 감자칩 제조사의 연구원에 따르면 그 기술의 핵심은 '감각 피드백(sensory feedback)'이다.
사람들은 과자가 맛있어서 먹기 시작하지만, 그들이 다 먹을 때까지 멈추지 못하게 하는 건
감자칩이 입안에서 부서질 때 느껴지는 촉각과 귀로 전달되는 '파삭' 하는 소리가 주는 쾌감이라는 것이다.
제조사는 소비자가 느끼는 촉각과 청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쾌감을 주는 피드백이 아주 약간 부족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몇 개만 먹고 100% 만족감을 느껴버리면 소비자는 과자 먹기를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 모자란 피드백이 우리가 허전함을 느껴서 하염없이 과자 봉지에 손을 넣게 하는 비밀이다.
세상에는 소비자의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는 소비자의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에이자 라스킨이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전문 분야는 스낵이 아니라 모바일 테크놀로지다.
그의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인터페이스의 '구루'로 통한다.
그가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기능이 바로 '무한 스크롤'이다. 이게 뭘까?
애초에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을 흉내 내며 시작되었다.
애초에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을 흉내 내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웹 '페이지'다.
페이지는 물리적인 책에 존재하는 것인데,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온 사용자들을 위해
웹사이트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 익숙한 형태를 재현해 둔 것이다.
하지만 테크 기업들은 페이지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콘텐츠를 돈 주고 사는 아날로그 모델과 달리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 사업 모델은 콘텐츠는 무료로 제공하고, 대신 광고비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고비는 사용 시간이 긴 서비스일수록 올라간다.
따라서 라스킨을 비롯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들의 목표는 단 하나,
사용자를 최대한 오래 붙들어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무한 스크롤이다.
페이지가 끝나지 않고 계속 내려가면서 콘텐츠가 무한히 등장하게 만들면
사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비스에 오래 머물게 된다.
디자이너들은 이것을 '첨잔'에 비유한다.
술잔을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옆 사람이 자꾸 잔을 채워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주량을 초과해서 마시게 된다. 무한 스크롤은 그런 첨잔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앱에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자신이 무한 스크롤이라는 기능 때문에 소셜 앱에서 시간을 더 빼앗기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어서 시간을 보낸다고 믿는다.
감자칩을 물릴 만큼 먹었는데도 계속 봉지에 손을 넣는 사람들의 '맛있어서 먹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테크 기업들이 사용자의 행동을 이런 방법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여기에서의 문제는 테크 기업들이 사용자의 행동을 이런 방법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사용자들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윤리학자들이 지적하는 '권력의 보이지 않는 불균형'이다.
기업들이 인공지능(AI)과 딥러닝을 통해 사용자들의 행동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 모르게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은
담배 회사들이 담배의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소비자 모르게 첨가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 문제를 우려한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를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이 문제를 우려한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를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그 전문가는 그 자리에서
"기술은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지만 인간의 뇌는 구석기 시대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며
AI를
사용하는 수퍼컴퓨터가 원시적인 인간의 뇌를 겨냥하고 충동을 부추기도록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산업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먹는 음식, 마시는 공기 속에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화 사회로 깊숙이 진입한 지금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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