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도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제2참모부(G2) 산하에는
캐논기관, 카베기관, 핫토리기관, 야마자키기관 등으로 불리는 정보 협력 소조(小組)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 소조들은 GHQ가 일본 점령 및 재건 정책에 긴요하다고 판단한 구일본군 관계자들을 활용하며 운영하는
비밀 조직이었다.
이 중 야마자키기관은 구일본군이 보유한 중국 인민해방군 및 주만(駐滿) 소련군 정보를 영역(英譯)하거나, 그곳에서 귀국하는 일본 잔류민으로부터 현지 동향을 탐문하여 업데이트하는 군사 정보기관이었다.
야마자키기관이라는 이름은 구참모본부 중국반장 출신 팀장인 야마자키(山崎) 중좌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전직 정보장교 그룹 외에 제도(製圖)반, 통역반 등 전문가가 투입되어
일본의 군사 정보 자산을 미군에 이전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야마자키기관은 구일본군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반도와 중국 접경지대 요충지의 항만, 군사시설 등을 상세하게 수록한 군사지도 작성 임무를 부여받는다.
각 지도는 첨부 해설서와 함께 작성 즉시 하와이 태평양 사령부로 송부되어 작전 계획 수립에 사용되었다.
2010년 야마자키기관의 존재를 보도한 일본 언론의 기사에는
당시 지도 제작에 참여한 담당자의 흥미로운 인터뷰가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업무가 폭증하는 가운데 특히 인천상륙작전 직전 즈음하여
부서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인천 주변의 지도 제작으로 매일같이 철야의 연속이었다. '무언가 있구나'라고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야마자키기관이 제작한 전시 군사지도는,
한국이 원하건 아니건, 일본의 정보 자산이 한반도 방위를 위한 동맹 전력의 일부를 구성하며,
한국의 안보는 그러한 '삼각 협력'에 의해 지탱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이 처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협력 체계의 중단이나 축소에 대한 동맹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