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실수는 문 대통령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줄 것으로 과신했던 점
여기서 비극이 시작
'윤석열이 조국 수사에 손대는 순간 그의 운명은 예정돼 있었다. …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윤석열의 마지막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어제 대검찰청 국감에서 윤석열은 "법과 원칙대로"를 반복했지만,
대통령은 검찰총장보다 더 힘센 칼을 갖고 있다.
조만간 검사장급 물갈이 인사를 통해 검찰 안에서 윤석열을 고립시킬 수 있다.
그가 제 손으로 사표를 안 쓸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작년 10월 18일 자 '윤석열 검찰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칼럼이다.
윤석열에게 환호하던 이들에게는 불편했겠지만, 현 정권의 속성을 아는 사람들은 내심 동의했을 것이다.
정말 석 달이 안 돼 현실이 됐다.
윤석열은 야당의 반대로 청문 보고서 채택이 안 된 채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소위 대통령의 '코드 인사'였다.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며 임명장을 줬고,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으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덕담했다.
이런 둘 사이가 '청와대와 검찰의 대격돌'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 상황을 연출할 줄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당초 윤석열은 철저히 '대통령의 사람'이었다.
그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은 안 된다'며 청와대에 의견을 개진한 것은
대통령 인사권에 반기를 들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대통령에게서 확실한 점수를 따려는 의도였다.
조국은 위법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였고 검찰 자료도 확보돼 있었다.
수사하게 되면 어차피 장관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정권이 타격을 덜 받으려면 조국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윤석열은 "청와대가 내 얘기는 안 들어주고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며 주위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의 판단이 옳았을 것이다.
다만 그의 중대한 실수는 문 대통령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줄 것으로 과신했던 점이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됐다.
대통령에게 조국은 후계자였지만 윤석열은 도구라는 점을 몰랐다.
대통령 총애의 클래스가 다른 것이다.
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강행은 검찰을 향해 '수사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윤석열은 부하들에게 '대통령 뜻이 저러니 그냥 덮어두자'고 말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았음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이겠다는 의욕도 있었다.
이미 고발돼 있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시킨 것이다.
조국이 장관직에서 버티는 동안 수사 진도가 너무 나가버렸다. '청와대 권력형 비리'로 발전한 것이다.
조국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수사의 칼날은 문 대통령 턱밑까지 겨누게 됐다.
청와대가 윤석열을 '정권의 위험인물'로 여기고 쳐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윤석열도 이렇게 끌고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굴러간 것이다.
애초에 착수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미 진행된 수사는 검찰총장이라도 막을 수 없다.
그만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순간 직무 유기나 직권 남용이 된다.
참모와 수사팀 검사, 계장들이 그를 다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인과 한 통화에서
"지금으로서는 혐의가 나오는 대로 수사할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검사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언론사 조직 생리가 이와 비슷하다.
대형 사건이 굴러가고 있으면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해도 편집 간부나 경영진이 일선 기자에게 취재 중단을 지시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언론사 간판을 내리고 무역 회사로 바꿔 달아야 한다.
검찰의 존재 이유도 그런 것이다.
혐의가 나오면 수사해야 하고 덮고 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예외 조항이 있다는 걸 그는 몰랐다.
"청와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으면 수사하라"는 문 대통령 말을 너무 믿은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대통령의 연기가 너무 교묘해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다.
청와대의 본색은 그저께 밤 대대적 검찰 숙청 인사로 드러났다.
독재자나 할 법한 이런 공세 앞에서 검찰은 무기력했다.
검사장급 이상의 집단 사표나 전국 평검사 회의 개최 소식도 없었다.
윤석열은 마치 수족이 잘린 채 연금된 모양새가 됐고,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총장이 내 명(命)을 거역했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이런 굴욕은 끝이 아닐 것이다.
청와대는 후속 인사를 통해 권력형 비리 수사팀을 바꿔버릴 것이다.
그가 제 발로 검찰을 떠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버텨내고 진행된 수사를 끝마쳐야 한다.
그게 검사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다.
당장은 문 대통령의 권력이 이겼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찰을 보복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권력자'로 기록될 것이다.
아마 악령(惡靈)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정치인 추미애도 그 도구가 됐다는 낙인을 결코 지우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