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6.27 03:00
[현길언]
현대사에 희생·아픔 겪은 청년들, 6·25 겪고 노년 이르는 과정 그린 장편
'묻어버린 그 전쟁' 발간
"내년이면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데, 어느덧 이 전쟁이 잊힌 듯하다.
6·25로 인해 우리 내면에 숨어 있던 폭력과 증오와 대립과 반목의 악령들이 활개치면서 우리를 지배했다.
불안과 의심과 비겁과 불신의 씨앗까지 심어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6·25를 살고 있다."
소설가 현길언(79)이 장편 소설 '묻어버린 그 전쟁'(본질과 현상)을 냈다.
소설가 현길언(79)이 장편 소설 '묻어버린 그 전쟁'(본질과 현상)을 냈다.
지난 연말부터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퇴고를 거친 소설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작가는
"남북 화해 시대에 6·25 를 다시 들추면 시대착오적인 '꼴통 보수'로 몰리겠지만,
남북한이 진정으로 화해를 하려면 북한이 저지른 비극의 진실을 공유해야 한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소설은 남북한 분단 이전, 평양에서 청년 목사로 활동한 세 사람을 중심으로 격동의 현대사를 묘사한다.
역사에 희생된 개인의 아픔을 재현할 뿐 아니라, 종교와 정치의 관계도 성찰한다.
젊은 목사들이 6·25 이후 저마다 역사의 갈림길을 선택하거나 선택을 강요당하면서
노년에 이른 과정이 그려진다.
마무리는 현실의 가혹한 힘에 무너진 삶의 아이러니로 꾸며진다.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노년에 평양을 방문한 주인공이 고향에서 고향 상실을 겪는 상황을 그린다.
"재미교포 사회에서 활동한 평양 출신 목사가 1990년대 초 고향 평양을 방문했다가 행방불명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작가는 6·25 특징을 '군인보다 민간인 학살이 더 많은 전쟁'이라고 했다.
작가는 6·25 특징을 '군인보다 민간인 학살이 더 많은 전쟁'이라고 했다.
"제가 아는 어느 종교학자의 부친은
6·25 때 대전에서 공무원이었다는 이유로 좌익에게 학살당한 뒤 집단 매장됐다.
30여 년이 지나 그곳에 아파트를 짓던 중 유골들이 발견됐지만,
유골들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다른 곳에 또 집단 매장됐다.
미군이나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여러 차례 조사됐지만,
묘하게도 좌익의 인민재판에 의한 학살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학살의 주체가 북쪽이기 때문에 밝힌다 한들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고,
조사해도 무의미하다는 편견에서 그 학살을 묻어두고 있다.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제주 4·3 사건도 유년기에 겪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제주 4·3 사건도 유년기에 겪었다.
"제주도 빨치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56년이었다.
4·3 사건을 주도한 좌파는 대개 양반이나 부잣집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그들 중 지도부 6명은 4·3사건을 일으킨 공로로 1948년 북한에 가서 대의원으로 선출된 뒤 돌아오지 않았고, 일본으로 밀항한 사람들은 대개 돈과 인맥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사람들만 선동에 휩쓸렸다가 희생된 게 4·3사건의 실상이다."
작가는 최근 정부가 일으킨 김원봉 서훈(敍勳) 논란에 대해
작가는 최근 정부가 일으킨 김원봉 서훈(敍勳) 논란에 대해
"6·25 남침의 전위 역할을 한 특정인을 국가 유공자로 선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 인식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인 '친일파'는 물러나고,
그들에게 핍박받은 '빨갱이'는 기를 펴서 사회의 주도 세력이
돼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내년 6·25 70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듯이 한국 공산주의자 인명사전도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해악을 끼친 비중으로 봐선 친일파보다 공산주의자들이 더 심했다.
사상이 다르면 친척도 친구도 스승도 숙청했다.
민족보다 당의 강령만이 최고였기 때문에 반(反)민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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