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하고 싶은 분은 고 함석헌 선생과 김재준 목사”
by한겨레
‘그분을 생각한다’ 낸 한승헌 변호사
“세상에 알리고 싶은” 27명 삶 회고
녹두장군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요즘도 인사동에 밥 먹으러 갈 때면 (고 천상병 시인 아내가 하던) 찻집 ‘귀천’에 들러요.
벽에 천 시인 유품이 이것저것 걸려 있더군요.”
최근 <그분을 생각한다>(문학동네)란 책을 낸 한승헌 변호사 말이다.
그가 인권변호사와 민주화 운동가로 살며 인연을 맺은 이들 가운데
세상에 알리고 싶은 27명에 대한 회고를 담았다.
“세상에 온 순서대로 배열해” 녹두장군 전봉준이 1번, 문재인 대통령이 27번이다.
1930년생인 고 천상병 시인은 18번이다.
저자는 동백림 사건(1967년)으로 구속된 이응노 화백 부부의 변호를 맡아 서울구치소 접견을 다니다
천 시인만 변호사가 없다는 걸 알고 변호를 자청했다.
큰 고초를 겪고 감옥을 나온 천 시인이 한 변호사를 찾아 “저녁을 사겠다”며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 했단다. 가난한 자가 온 마음을 다해 밝힌 등불이란 말이다.
아는 사람만 만나면 “천 원만”하던 천 시인의 이 ‘역사적인 제안’에 대해
저자는 “우선 (빈자일등은) ‘집행유예’로 해놓고 부자 되면 그때 한턱 쓰라”고 답했단다.
34년 생으로 저자와 동갑인 이어령 평론가는 21번이다.
67년에는 변호인과 증인, 75년엔 피고와 증인으로 저자와 만났다.
이 평론가는 67년 소설 <분지>(남정현 작) 필화 사건 때 피고 쪽 증인으로 나와
'분지'가 반미소설이 아니라고 밝혔다.
8년 뒤에는 한 변호사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역시 필화 사건이었다.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는 등 유신 정권의 살기가 등등한 시절이었으나
이 평론가는 저자의 요청에 기꺼이 피고 쪽 증언대에 섰다.
“젊은 시절 호기를 부리던 때나, 희수를 지난 오늘이나 만나면 농을 하고 담론을 즐긴다.
마치 체온기처럼 상대가 품고 있는 마음의 온도를 잴 수가 있다.
가는 길이 다른데도 늘 만나는 접점이 있고 어울리는 울타리가 있다.”
언젠가 이 평론가가 저자에게 준 쪽지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전화로 저자에게 ‘그래도 가장 잊을 수 없는 분이 누구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함석헌 선생과 김재준 목사이죠. (모두 1901년 생이다.)
두 분에게서 깨달음을 많이 얻었어요. 어려운 시대에 나라의 어른으로 투쟁도 하고 말씀도 하셨죠.
두 분의 삶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는 70년대 초반부터 함석헌 선생 댁을 자주 드나들었단다.
함 선생이 한번은 몸이 불편해 시국강연회 참석이 어렵자
두 시간 전에 대타로 저자를 지목해 함 선생 대신 연단에 올랐단다.
그는 그때의 아찔한 심정을 떠올리며, “‘하느님이 보우하사’란 말로 메꿀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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