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6.10 03:14
등소평이 1980년대에 중국의 외교 노선으로 설정했다고 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워야 한다.'
회(晦)는 한 달 중에서 그믐을 가리킨다. 거의 달빛이 사라진 때이다.
일반적으로는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드러내야지, 왜 어둠을 키워야 된다고 말한단 말인가!
이 어둠은 중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수신과 처세의 기본으로 삼아온 철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면 상대방은 자기를 알아보기 어렵다.
알아보기 어려워야만 안전할 수 있다.
자기 잘났다고 나대는 순간에 망조가 시작된다.
노출되면 공격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서양 연금술사들은 악어를 중시했다.
서양 연금술사들은 악어를 중시했다.
악어는 물속에 있으면서 눈만 살짝 내놓고 상대방을 관찰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물속에 잠겨 있는 악어를 보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땅덩어리가 넓어서 수많은 변란과 전쟁이 많았다.
이런 난세에서 자기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아주 순진한 행동이다. '날 잡아 잡수'와 똑같다.
그래서 중국의 지도자상은 '후흑(厚黑)'이다.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은 시커메야만' 훌륭한 지도자이다.
낯가죽이 얇고 마음이 여리거나 솔직하면 지도자가 못 될 뿐 아니라 단명한다고 본다.
오죽하면 '후흑학(厚黑學)'이란 책도 있다.
어둠이 정치적 마키아벨리즘으로 가면 '후흑'이 되지만,
개인 수양의 측면으로 가면 '겸손'이다.
겸손을 뒤집으면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을 말한다.
자신의 호나 또는 현판에 회(晦) 자를 썼던 배경에는 겸손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주자의 호가 회암(晦庵)이고, 이언적 선생의 호가 회재(晦齋) 아닌가.
우리나라 선비들의 호나 당호에 '회' 자가 많다.
한자 문화권에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어둠의 철학을 가장 잘 정리한 내용이
한자 문화권에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어둠의 철학을 가장 잘 정리한 내용이
주역의 36번째 지화명이(地火明夷) 괘이다.
땅속에 불이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보면 '용회이명(用晦而明)'이라는 유명한 대목이 나온다.
지도자(임금)는 '어둠을 써서 정사를 밝힌다'는 뜻이다.
주역 해석으로 유명한 왕필(王弼)은 '밖에 밝음을 드러내
면 교묘하게 피하게 된다(顯明於外 巧所辟也)'고
주석하였다. 결국 도광양회하라는 이야기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을 보면 시진핑이 용회(用晦)의 철학을 간과한 것 같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을 보면 시진핑이 용회(用晦)의 철학을 간과한 것 같다.
150년 전의 아편전쟁이 서론이었다면 이번 미·중 갈등은 본론에 해당할 만큼 규모도 크고 타격도 깊다.
한반도는 그 전쟁의 최전선이다.
세계사의 가장 한복판에 있는 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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