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친일청산이란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부는 '매카시즘'
혐오를 부추겨 나라를 좀먹는 허깨비놀음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윤덕 문화부장](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4/19/2019041903232_0.jpg)
1950년, "미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조셉 매카시 공화당 의원의 연설이 '광풍'으로 번진 데는 언론이 일조했다. 독설가 매카시의 고발이 자극적이고 선동적일수록 언론은 이를 앞다퉈 보도했다. 냉철한 지성조차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의심했고 채플린, 아인슈타인도 누명을 썼다. 매카시의 칼춤을 잠재운 건 한 언론의 뚝심이었다. CBS 기자 에드워드 머로는 '빨갱이'로 몰릴 위험을 무릅쓰고 매카시 선동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것이 얼마나 날조된 허위인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가 인격 살인 당했는지 증명해내면서 미치광이의 '3년 쇼'를 끝냈다.
'마녀사냥'은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최순실 광풍'도 그중 하나다. '국정 농단의 마녀'와 옷깃이라도 스치면 '유죄' 판결을 받던 때였다.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코디 최는 그 희생양이다. "최순실 측근의 입김으로 비엔날레 작가가 됐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의심이 풍문에서 사실로 둔갑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역시 언론이 기여했다. 제목에 '최순실'만 달면 흥행이 보장되던 때였다. 언론은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과 유학한 대학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최순실 라인'으로 단정했다. 허위 기사들은 작가의 일터와 후원자를 앗아갔다. 분노한 그는 "어차피 진다"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언론을 법정으로 불러냈다. 대법원까지 간 3년 소송에서 그는 이겼다. 해당 매체들은 최근 정정 보도문을 내고 배상했다.
마녀사냥은 '성적(性的) 매카시즘'으로 명명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절정에 달했다. 청와대엔 침대가 셋, 성형 비용만 2000억, 올림머리 90분, 섹스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중년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거짓 보도들이 무차별 쏟아졌다. 여성에 대한 집단 광기와 성희롱이 '촛불' 전야의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이를 묵인 또는 주도했던 좌파 언론들이 1년 뒤 '미투(Me too)' 폭로에 앞장선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포퓰리스트가 득세하는 시대엔 증오와 혐오가 통치의 수단이 된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이념 간,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의 정도가 많게는 여섯 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혐오와 분노의 총구는 지금 이 순간도 사방으로 겨눠지는 중이다. '적폐 청산'이란 말로 시작된 혐오와 편가르기는 '5·18 망언 분노', '반민족 친일 청산', '세월호 책임자 처벌' 등으로 반복되며 사그라들 줄 모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호통 치니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 19일 열린 미디어연대 창립 1주년 토론회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4대 강 정비 사업을 옹호하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를 비판하는 행위들은 모두 보도 불가한 성역이 됐다"며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퇴보"라고 한탄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죄와 벌'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세계 문학사의 걸작이다. 한때 공상적 사회주의에 빠져 사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유형 생활까지 한
작가는 "분노는 정의를 촉발시킬 수 있지만 정의 자체는 아니다. 정의를 완성시키는 건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라고 했다.
3년 전 광화문 광장을 밝혔던 촛불, 그로 인해 권력을 얻은 현 정권과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언론들이 부르짖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나라를 좀먹게 할 뿐인 이 허깨비 놀음과 소모적인 광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