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교수님

[이어령]‘암투병’ 이어령 “항암 치료 안 받아 …암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 (탑클래스,동아일보, 중앙일보)

colorprom 2019. 2. 3. 16:41

 https://youtu.be/fYqalmF_lhM


[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탑클래스, 2019, 2월호

이어령 교수

목마름, 욕망 자체가 삶이라는 거지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김선아          

        


이어령 교수의 밤은 짧다.
2017년 가을, 4기 암 선고를 받은 이후부터 그의 삶의 시계추는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낮은 점점 길어지고, 밤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 순간, 숙제 속도가 빨라졌다.
그 스스로에게 부여한 무한 확장의 숙제들.
그걸 다 해결하려면 130년은 살아야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숙제들을 하나하나 해내느라
그의 하루는 점점 더 농밀해지고 있다.
       
이어령 교수를 지난 1월 4일,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 만났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생각은 명료했고, 논리는 정연했으며, 발상의 전환으로 ‘아!’ 하는 지적 충격을 안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사그라지지 않는 지적 호기심이 낳은 ‘영원한 우물물의 욕망’에 대해
그는 쉼 없이 말을 이었다.

유튜브 채널 ‘셀레브’에서 선생님 인터뷰가 여전히 화제입니다.
조회 수 48만 6500여 회로 역대급이더군요. 선생님 영상의 인기 비결이 뭘까요.

“나는 글을 쓰거나 강연할 때 새로운 소리를 한 게 없어요.
셀레브 인터뷰의 골자는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잖아. 다 아는 이야기지.
한데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연하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만 해왔어요.
가령 ‘우리 집에 고양이와 개가 있습니다’ 하면 화제가 안 되니까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있어요’ 식의 이야기를 하려 하지.
나는 살아오면서 경천동지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이 못 본 체하고 지나치려 한 것을 정색하고 이야기하는 거지.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 공감을 해요.
아인슈타인의 E=mc² 같은 이야기에 40만 명 넘게 공감하겄어?”


다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잖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 ‘복이 뭐예요?’ 하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새해만 되면 되풀이하다 보니 자동으로 말해버려요.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입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귀로 들어서 입으로 나오는 거지.
내가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 머리로 생각한다는 점일 거야.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최근 선생님이 의심하고 회의하는 대상은 뭔가요.

돼지야. 돼지의 특성을 사람들한테 말해보라고 하면 거의 다 ‘뚱뚱하다’고 하지.
그래서 살찐 사람을 ‘돼지 같다’고 하고. 과연 그럴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돼지의 특성은 뚱뚱한 게 아니라, 다리가 짧은 거야.
돼지처럼 다리 비율이 짧은 짐승이 또 어딨어요? 돼지에 대한 오해지.
또 있어. 새해가 되니 ‘60년 만에 황금돼지가 돌아왔다’고 떠들썩해. 이 표현이 참 답답해요.
우리는 60년 전과 똑같은 시각으로 돼지를 바라보고 있어요.
성장 속도가 빠르고 생식이 왕성하니 돼지가 풍요의 상징이라는 건데, 이건 농경시대의 패러다임이야.
‘돼지관’을 바꿔야 해요.”


황금돼지, 풍요돼지가 아니라면요.

“잘 봐요. 재밌는 이야기가 많아.
강남의 입시정보왕 엄마를 뭐라고 해요? 돼지엄마라고 하잖아. 이때의 돼지는 ‘정보돼지’야.
돼지는 냄새를 잘 맡아. 개보다 후각이 10배 민감하지.
그래서 프랑스프로방스에서는 땅속에 있는 송로버섯을 돼지가 찾아내.
그다음 생명화 시대의 돼지는 ‘바이오돼지’야.
돼지는 장기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 특성이 인간과 가장 비슷해.
그런가 하면 ‘소통돼지’이기도 하지. 요즘 반려동물로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늘고 있잖아.
살도 몽글몽글하고 보기보다 머리가 좋아서 웬만한 개보다 지능이 높아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는 말씀이신데, 그런 열정을 잃은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노력해도 기회가 오지 않는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요.


“일자리는 없어. 하지만 자기가 만들 수 있어요.
BTS(방탄소년단)를 봐요. 오프라인 소속사에 가려면 기회가 적겠지만, 온라인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지지.
온라인에는 멀고 가까운 게 없으니 남미까지 1초 만에 갈 수도 있고, 돈도 안 들잖아.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일자리를 만든 거지.”


기존 패러다임으로 일자리를 찾지 마라?

“그렇지. 황금돼지, 풍요돼지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일자리 만원이지만,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져요.
이미 있는 단 하나의 의자에 앉으려 하면 서로 앉으려 밀쳐내고 싸우지만, 의자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어때요? 내가 만들어 내가 앉으니 확실하지.
우물물을 마시려 하지 말고, 우물물을 파는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목마른 갈증을 가지고 새 우물을 파라는 거지.
지적 상상력이나 엄청난 아이디어는 20대가 절정이야.”


선생님의 경우는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창조적 상상력이 여전하시죠.
방대한 독서와 사색이 이를 가능케 했을까요?


“그런데 덮어놓고 천 권의 책을 읽는 사람과는 다르지.
산 전체를 뒤진다고 다이아몬드가 나와요? 어디를 파야 광맥이 있는지를 아는 거야.
인문학자인데 돼지를 왜 찾아 봤겄어?
12지 연구를 왜 했으며, 젓가락, 가위바위보, 보자기 문명을 왜 연구했겄어?
나의 창조적 상상력은 다독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 거예요.”


지적 호기심은 선천적인 것 아닌가요?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다 있는 거지.
내 특징은 유년 시절의 상상력과 호기심, 반짝이는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지금까지 잃지 않았다는 거예요.
젊은이들도 어린아이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일터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일터를 만들고
인생을 바깥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으면 해요.”


요즘 새롭게 파기 시작한 우물이 있는지요.

“있어요. 최근 40권짜리 《한국인 이야기》 작업을 거의 끝냈는데, ‘탄생’에 대해 파고 있어요.
김 편집장은 몇 살 때까지 기억해?”


사진의 기억인지 확실치 않지만 5~6살 정도까지인 듯합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안 살았구만.”


하하. 기억에는 없어요.

“그러면 어머니 태 안에 있을 때 기억나요?”


당연히 안 납니다.

“답답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태어났을까?
어머니 뱃속에는 학원도 없고, 태아는 언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9개월이 됐는지 알고 10개월째 나갔을까?
도대체 그게 뭘까?
나는 그게 궁금하거든.
탄생과 관련해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근원을 알고 싶은 거지.”


그래서 ‘세 살 마을’을 만드시고, 새천년준비위원장 시절엔 ‘밀레니엄 베이비’를 생중계하신 거군요. 88올림픽 ‘굴렁쇠 소년’도 결국 아이의 시선이고요.

“맞아. 그건 우연이 아니에요. 일관해서 흐르는 나의 호기심의 근원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태어났나’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면 종종 어린아이의 눈빛을 봅니다. 궁금해서 죽겠다는 어린아이의 눈빛.
신체나이는 87세신데,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의 나이는 몇 살이신가요.

“나는 나이를 생각해본 적 없어요.
호적 나이와 실제 나이, 양력 나이와 음력 나이가 다 다르다 보니 막 헷갈리거든.
이름도 그래요. 어렸을 때는 ‘으영’이었어. ‘어’자를 서울 근교에서는 ‘으’로 발음했거든.
그러더니 표기할 때는 ‘어녕’이가 됐어. 이화여대 시절에도 ‘이어녕 교수’로 불렸지.
한데 교육부 교과서에는 ‘어령’으로 표기돼 있어요. ‘영’자를 ‘령’으로 속음화해서 읽었거든.
나는 지금도 내 이름이 으영인지, 어녕인지, 어령인지 모르겠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는 성별, 연령, 이름이잖아.
내 성별이 남자라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연령과 이름이 애매한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으셨나요.

생각. 내 생각에서 찾아야지. 허허.”


질문을 바꿔볼까요.
세상 모든 아이는 지적 호기심이 있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 호기심을 잃어버린다고 하셨지요.
호기심으로 본 선생님의 나이는 몇 살 정도일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에서 정지된 것 같아요. 12~13세 정도.
그때 인생관도 바뀌고, 혼자라는 걸 알게 되고, 남에게 의존하지 말자는 생각도 들었지.
소아마비에 걸리면 다리 하나가 자라지 않듯, 그때 멈춰서 어린아이의 눈으로 죽 살아온 것 같아요.
이중 구조가 생긴 거지.
문학이나 예술을 말할 때는 어린 시절의 호기심에 빛나는 내가 있어.
사물마다 경이롭고, 나비마다 다르게 날고, 꽃들마다 환희에 차 있는.
이게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타우마젠(Thaumazen)’이지.
타우마젠을 얻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책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발견하면 판단 정지가 되면서 ‘억!’ 하고 덮어버리지.”


눈을 더 크게 뜨고 읽는 게 아니라, 덮어버리신다고요?

“너무 놀라서. 그 감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지.
첫눈에 반한 기막힌 여성이나 남성을 만나면 온몸이 굳어버리잖아. 그런 순간이 있는 거야.
숨도 못 쉬고, 걷지도 못 하고, 얼어버리는.
그 순간은 기쁨인 동시에 공포이기도 해요.
호랑이를 만나서 도망가는 건 덜 공포스러운 거야. 정말 무서우면 움직여지지 않지.”


그런 엄청난 지적 환희의 순간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아직 못 만났지. 그냥 덮는 정도는 만났지만.”


이중 구조에서 나머지 하나의 아이덴티티는 뭔가요.

“남편, 아버지, 교수, 위원장, 장관 같은 것이지.
이런 사회적 자아로 살아가려면 권위도 가지려 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해야 하지.
어린아이 같은 나도 있고, 이런 나도 있어요.”


암 4기 선고를 받은 후 달라지신 게 있다면요.

“이 유리컵을 앞으로 얼마 이상은 못 쓰게 된다면 어떨까? 모셔둘까? 한 번이라도 더 쓰겠지.
같은 식이에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치열하게 살게 돼요.”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나는 그런 게 없어. 버킷리스트가 생기면 바로 해버리지.”



셀레브 영상에서는 평생 읽고 써온 외길 인생을 회고하시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내비치셨는데요.

“그건 후회와는 달라요. ‘다른 길로 가면 또 다른 삶이 있었을 텐데’ 하는 호기심이지.
나는 내 세계가 우주이고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이 길이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다른 좋은 길은 없었을까? 하는 무한한 욕망이지.”


육체의 나이가 연장되어 200년까지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하실 건가요.

“200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하루를 살든 질(質)로 생각해요.
200년은 200년의 하루가 있는 것이지, 200년의 시간이 있는 게 아니야.
오늘 하루,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끝없이 시간이 스쳐가는 한순간을 살아가는 데 진력할 뿐이에요.”


미루기는 안 하시나요.

“허허. 왜 안 하겄어. 중요한 일은 나도 ‘내일 하자’고 해요.
직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툭하면 ‘주말에 할게’ 해.
인간은 시간에 인위적인 칸막이를 해서 주말과 주초를 만들어요.
관습화된 시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모어 댄(more than)과 모어 레스(more less)가 있을 뿐.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끝없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중요한 걸 내일로 미루는 거야.”


중요한 걸 먼저 하시는 게 아니고요?

“그게 내가 종종 말하는 해녀 얘기야.
해녀들이 전복을 숨겨놓고 ‘내일 좋은 사람이 오면 따다 줘야지’ 해.
전복은 점점 크는데, 이제는 전복에 갈 수 있는 힘이 없어. 늙어서.
마지막에는 보물섬 지도밖에 못 그려주지.
내가 요즘 하는 이야기들이 바로 보물섬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에요.”


그 전복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게 확실한가요?

“중요한 질문이에요.
내가 따 오지 않은 전복이 정말 거기에 있었는지, 그게 정말 전복이 맞는지, 빈 껍질인지 모르는 거야.
따 와야 전복이지. 두고 온 전복은 전복이 아니지.
이게 인생을 속이는 기막힌 일루전(환상)이야.”


실패를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많지. 실패를 해봐야 성공을 하지, 실패도 안 해 보고 어떻게 성공을 하겄어.”


우물을 파다가 우물물이 안 나오면 실패라는 단어를 쓰시나요?

“그렇지. ‘실패했네’ 하고 다른 우물을 파지. 그래서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도전이에요.
우물을 파서 물 마시려는 사람은 그게 끝이야. 물이 안 나왔으니까.
그런데 호기심으로 우물을 판 사람은 물이 안 나와도 끝이 아니야. 호기심은 그대로니까.
실패를 두려워하고 성공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또 다른 우물물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족이 없는 법이지.
욕망 자체가 삶이라고 생각하면 노력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뭔가요.

생명이지. 나뿐 아니라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해요.
생명 자체가 목적이고, 찬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지.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것이야.
죽은 사람이 무슨 고통이 있겄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온 우주에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승리인 생명력이에요.
어떤 절망의 시대에도 생명의 힘은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 2019년 02월호



[ 이슈 ]

‘암투병’ 이어령 “항암 치료 안 받아 …암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

by동아일보


‘암투병’ 이어령 “항암 치료 안 받

사진=동아일보 DB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중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어령 교수는 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부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고 고백했다.


앞서 이 교수의 딸 고 이민아 목사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한 후 김한길 전 국회의원과 결혼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로스쿨을 거쳐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검사를 역임했다.

하지만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맞고 첫 아들을 잃는 등 굴곡진 삶을 살다

고인은 2009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5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 사망했다.

고인은 생이 끝날 때까지 책을 집필하고, 강연을 이어나갔다.


이 교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암 선고를 받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딸을 떠올리며

“딸에게는 죽음보다 더 높고 큰 비전이 있었다. 그런 비전이 암을, 죽음을 뛰어넘게 했다.

나에게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비전이 있을까”라면서 그게 두렵다고 했다.


그는 현재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

그는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며

투병(鬪病)’이란 용어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간이 죽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유언이다.

나의 유산이라면 땅이나 돈이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이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유언 같은 책을 완성하고 싶다.”며

생이 다하는 날까지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1934년생으로 올해 86세인 이어령 교수

문화부 장관·비평가·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소설가·시인·관료를 두루 거친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이다.


그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키스’ 등 다수의 책을 펴냈으며,

1979년 대한민국예술상, 199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1년 서울시문화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변주영 동아닷컴 기자 realistb@donga.com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어령 "암 통보받아···죽음 생각할 때 삶이 농밀해진다


[중앙일보] 입력 2019.01.07 06:30 수정 2019.01.07 18:15


3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이어령(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를 만났다.

호적상 85세다. 실제 한국 나이는 올해 87세다. 호적에 이름이 뒤늦게 올라갔다고 했다.

항간에 투병설이 있었지만 안색도 좋고, 표정도 밝고, 열정도 넘쳤다.

그에게 ‘이어령의 삶과 종교, 그리고 문명론’을 물었다.



이어령 교수는 "탯줄을 끊기 전에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인가, 아니면 배 밖으로 나와 탯줄을 끊을 때부터 나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는 "탯줄을 끊기 전에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인가,

아니면 배 밖으로 나와 탯줄을 끊을 때부터 나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건강하신가.

“우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투병한다. 4㎝도 안 되는 좁은 산도(産道)를 필사적으로 나오지 않나.

그때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그건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또 이별을 한다.”

 
무엇과 이별인가.

“태중에서는 엄마와 한 몸으로 존재한다. 탯줄을 끊으면서 엄마와 이별해야 한다.

그러니까 만남이 먼저인가, 이별이 먼저인가. 그렇다. 이별이 먼저다.

그러니 삶의 시작은 ‘헤어짐’에서 비롯된다.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이 교수는 문득 여섯 살 때 기억을 떠올렸다. 잊히지 않는 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굴렁쇠를 굴리며 보리밭 길을 가고 있었다. 화사한 햇볕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대낮의 정적, 그 속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부모님 다 계시고, 집도 풍요하고, 누구랑 싸운 것도 아니었다. 슬퍼할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먹먹하게 닥쳐온 그 대낮의 슬픔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내게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가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은 더욱 농밀해진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는 "우리가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은 더욱 농밀해진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부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경천동지할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암이야. 어떻게 할까?’

여섯 살 때부터 지금껏 글을 써온 게 전부 ‘죽음의 연습’이었다.

‘나는 안 죽는다’는 생각을 할 때 ‘너 죽어’이러면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너 죽어’ 이런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이 교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나는 살아있다’는 생명의식은 ‘나는 죽어있다’는 죽음의식과 똑같다.

빛이 없다면 어둠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

의사의 통보는 오히려 내게 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이 교수는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

그는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불렀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서양사상은 영혼과 육체를 둘로 나눈다.

영혼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고, 육체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동양사상은 다르다.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본다. 상호성이 있다고 본다.

의사가 ‘당신 암이야’ 이랬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그래서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어령 교수가 요즘 사용하고 있는 노트와 펜을 보여주었다. 노트에 필기를 하면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는 첨단 방식이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가 요즘 사용하고 있는 노트와 펜을 보여주었다.

노트에 필기를 하면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는 첨단 방식이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가 필기한 지점을 펜으로 꾹 누르자 녹음해 두었던 메모가 흘러나왔다. 이 교수는 집필 작업에 스마트 노트와 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가 필기한 지점을 펜으로 꾹 누르자 녹음해 두었던 메모가 흘러나왔다.

이 교수는 집필 작업에 스마트 노트와 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최승식 기자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영원히 살면 괜찮다. 그런데 누구나 죽게 돼 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중요하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정월 초하루에, 그 좋은 새해 첫날에 왜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겠나.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더 농밀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삶이 가장 농밀한 시기가 언제인지 아나. 요즘이다.”

 
왜 요즘인가.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이 교수는 7년 전에 소천한 딸(이민아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목사도 생전에 암 통보를 받았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딸도 당황하지 않았다.
의사는 ‘수술하면 1년, 안 하면 석 달’이라고 했다. 딸은 웃었다.
‘석 달이나 1년이나’라며 수술 없이 암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오히려 진단한 의사가 당황하더라.

그게 무슨 큰 도를 닦아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그때부터 딸은 책을 두 권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연했다.

딸에게는 죽음보다 더 높고 큰 비전이 있었다. 그런 비전이 암을, 죽음을 뛰어넘게 했다.
나에게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비전이 있을까.”

그는 그게 두렵다고 헀다.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 살았던 사람에게 죽음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 살았던 사람에게 죽음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생각하시는 비전이 뭔가.

“우선 비전의 바탕, 내 삶을 그리는 바탕을 말하고 싶다.


먼저 ‘인법지(人法地)’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 사나. 지구에 살지 않나.

다음은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 산다.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자리도 있으니까.

그럼 그게 전부냐. 아니다. ‘천법도(天法道)’.

하늘은 도(道)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럼 도(道)가 끝인가? 아니다. ‘도법자연(道法自然)’. 도(道)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마지막의 ‘자연’이란.


우리는 그동안 ‘인법지’할 때 ‘지(地)’가 자연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게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그럼 ‘스스로 된 것’은 뭔가.

“누군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의 아들인가?’

그러자 예수는 ‘예스, 에고 에이미(ego eimi·그리스어). 즉 예스, 아이 엠(Yes, I am)’이라고 답했다.

‘아이 엠(I am)’이 뭔가.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그게 신(神)’이다.”

 
이어령 교수는 "예수를 믿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는 "예수를 믿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최승식 기자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건 무얼 뜻하나.


“우리는 ‘너 예수교 믿어?’하고 묻는다. 그건 교(종교)를 믿느냐고 묻는 거다.

‘너 신을 믿어?’ 하는 물음과는 다른 이야기다.

교를 믿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든, 불교든, 도교든 모든 종교의 궁극에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와도 같은 게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의 존재다.

인간은 단 1초도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율자동차라는 말,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 같은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없다.”

 
이어령의 삶,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인간이 죽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유언이다.

나의 유산이라면 땅이나 돈이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이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유언 같은 책을 완성하고 싶다.”  

 
무엇에 대한 책인가.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을 썼다. 책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그렇다면 한번 당사자에게 물어봐라. 지금쯤  ‘제4의 물결’은 무엇인가.

요즘 툭하면 웹이니 산업이니 하는 키워드에 ‘2.0’ ‘3.0’ 번호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엔 “생명 3.0”까지 들고나오는 이들도 있다.

문명이 그렇게 1ㆍ2ㆍ3ㆍ4 번호 달고 순서대로 오는 것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

4차 산업혁명 뭐 걱정하나, 다음에 5차 혁명이 올 텐데. 그건 실없는 사람들 소리다.”  

 
그럼 문명은 어떻게 가는 건가.

“문명은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으로 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앨빈 토플러의 큰 잘못은 인류 문명의 물결을 농경시대부터 계산해 정보시대의 도래까지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나 두뇌 등 모든 조건은 수렵ㆍ채집 시대 때 형성된 그대로이다.

인간 문화ㆍ문명의 텃밭부터 계산했어야 한다.”



이어령 교수는 "문명의 출발점은 수렵채집 시대다. 거기에 대우주의 생명질서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이어령 교수는 "문명의 출발점은 수렵채집 시대다. 거기에 대우주의 생명질서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농경 시대’가 아닌 ‘수렵ㆍ채집 문명’이 출발점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아이가 태어날 때 언제부터 나이를 세나.

서양에서는 엄마 배 속에 있는 시간은 치지 않는다. 밖으로 나와 탯줄을 끊을 때부터 한 살이다.

인간이 만든 문화ㆍ문명이 아이를 키운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르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이미 한 살이다.

태아자신이 알아서 태반을 만들고, 호르몬 분비하고, 필터로 걸러내고, 뱃속에서 나갈 때를 결정한다.

인간의 문화는 학습 이전의 상태다. 누가 가르친 게 아니다.

태아에게는 태생기의 거대한 생명 질서, 우리가 모르는 대우주의 생명 질서가 있다.


그러니 태중의 아이를 한 살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그건 자연과 단절된 문화ㆍ문명으로 사느냐,

아니면 대우주의 생명질서를 바탕으로 오늘의 문명과 연결하며 사느냐의 문제다.”  

 
이 교수는 한국 사람은 그걸 연결하며 산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는 안고 잔다. 포대기로 업고 다닌다. 최대한 엄마와 밀착하게 한다.
그게 뭔가. 엄마 뱃속의 환경과 이어주려는 거다.
산모가 미역국 먹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태중의 양수는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하다.
과학은 생명이 바다에서 육지로 왔다고 말한다.”

반면 서양에서는 아기를 낳자마자 요람에 재운다. 다시 말해 엄마 뱃속, 자연과의 단절이다.

“한국 문화에는 그런 요람이 없다. 그러니 ‘생명 자본’이 누구에게 가장 많겠나.
서양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채집시대의 나물 문화를 바탕으로 정보시대의 선두까지 그대로 이어온 한국인에게 가장 많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는 "호칭을 장관으로 하지 말아달라. 그냥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는

"호칭을 장관으로 하지 말아달라. 그냥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정보화 시대, 그다음은 어떤 시대인가.

“나는 디지로그생명 자본을 썼다.

정보화 시대 다음에는 생명화 시대가 온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시대와 연결되면 재앙이지만, 생명화 시대의 기술로 사용되면 달라진다.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인적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 자연 자본. 그다음에 오는 것이 ‘생명 자본’이다.

그걸 제일 많이 갖고 살아온 이들이 한국인이다.

인류 문명이 태동한 태생기를 품고 사는 한국의 생활문화 속에 그게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다들 ‘돼지’라고 하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이어령 "암 통보받아···죽음 생각할 때 삶이 농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