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정체성 투쟁 (김대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2. 12. 15:34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20] 정체성 투쟁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          
    입력 2018.12.12 03:11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교육 도시로 유명한 보스턴은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허브이기도 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이 있고,

    규모나 역사적으로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보스턴 미술관이 있다.


    특히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폴 고갱'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서양 미술사의 중요 작품 중 하나다.

    '철없는' 예술가에 불과한 고갱의 작품이지만,

    그의 질문을 통해 지난 수천 년 인류의 전쟁과 싸움을 요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귀족과 노예, 지배한 자와 지배당한 자, 단일 신(神)을 믿는 자와 여러 신을 숭배하는 자.

    오랜 시절 동안 인류의 대부분 싸움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갈등으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언제나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야만 했기에 사회는 발전하지 못했고,

    단순히 나와 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영원한 원수가 되어야만 했다.

    과거가 사회·경제·정치를 지배하던 세상을 극복하기 시작한 시점을 우리는 계몽주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몽테스키외, 루소, 볼테르, 디드로

    가문과 혈통이 아닌 교육과 문화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믿었고,

    영국 계몽사상가 애덤 스미스제러미 벤담

    인간의 이기주의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를 구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지만 계몽주의가 던진 이 새로운 질문은

    자본주의, 공산주의, 무(無)정부주의, 나치주의를 탄생시켰고,

    인류는 지난 200년 동안 서로 다른 모습의 미래를 원하는 자들 의 끝없는 전쟁과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공산주의와 나치주의의 몰락, 그리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21세기 최고의 투쟁은 어쩌면 다른 과거를 가진 사람들의 싸움도,

    서로 다른 미래를 추구하는 자들의 전쟁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미래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끝없이 질문하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투쟁이 될 수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11/20181211034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