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2.08 03:06
200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에 나선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레이건의 할리우드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동료 배우가 레이건에게 "자네, 대통령 해볼 생각 없나?"라고 묻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자네도 내 연기가 별로라고 생각하나?"
유머를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장례식에서조차 농담을 빼놓지 않는다.
▶엊그제 열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상주(喪主)와 조문객들이 펼치는 유머의 향연이었다. 주로 고인(故人)의 농담이나 실수담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엊그제 열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상주(喪主)와 조문객들이 펼치는 유머의 향연이었다. 주로 고인(故人)의 농담이나 실수담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가 전한 고인의 농담이 압권이었다.
나토 정상회담 당시 부시가 멀로니에게 속삭였다.
"방금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을 깨달았네. 작은 나라일수록 연설이 길다는 사실 말이야."
▶미국 신문들은 독자가 보낸 짧은 부고(訃告)를 실어준다.
망자(亡者) 본인이 미리 쓴 부고도 있다.
월터 브룰이란 사람은 자신의 부고에
"이제 내 아내는 그토록 내가 반대하던 밍크코트를 살 수 있게 됐다"고 썼다.
2016년 7월 윌리엄 지글러라는 사람의 가족은
"아버지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와 클린턴 중 찍을 사람이 없어서 좀 일찍 떠나셨다"는 부고를 냈다.
묘비명에도 유머가 따라간다.
망자 이름 옆에 "내가 아프다고 했잖아"라고 쓰는 사람이 있고
"피라미드 크기쯤 될 줄 알았는데…" 같은 농담도 있다.
한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동성애자의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전쟁에서 두 남자를 죽여 훈장을 받고 한 남자를 사랑해 전역당했다."
▶우리 민족도 고려시대까지는 장례를 축제처럼 치렀다는 것이 역사학자들 설명이다.
역사 기록엔 고구려인들이 장례를 치르면서 북 치고 춤추며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인다고 적혀 있다.
중국에서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웃음이 사라지고 밤낮으로 애통해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그런 시각에서는 미국의 장례식이 경박해 보일 수도 있다.
▶"걱정들 마세요. 조지가 10분 안에 끝내라고 했으니까"라며 등장한
앨런 심슨 전 상원의원은
부시 장례식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이끌어 냈다.
그는 "유머는 인생의 거친 것들을 녹여주는 만능 용액이며 부시는 늘 유머를 잃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증오심은 그걸 품고 있는 사람을 먼저 공격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늘 새기고 있었거든요."
유머와 지혜, 멋진 정치가 어우러진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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