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일본][28] 일본 영토가 된 태평양의 절해고도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1. 30. 16:06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8] 일본 영토가 된 태평양의 절해고도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          
    입력 2018.11.30 03:12

    칼럼 관련 일러스트
    태평양 한복판 북위 27도 동경 142도 지점에 '보닌섬(Bonin Island)'으로 알려진 무인도가 있었다.
    1827년 영국 군함 블라섬호가 이곳을 찾아 영유권 표지를 남긴다. 무주지 선점의 의미였다.
    1830년대 영국의 후원으로 백인들이 입식(入植)하자, 이곳은 특이하게 백인들이 원주민인 땅이 된다.

    영국은 중국 진출 교두보로 이곳에 눈독을 들였으나, 1840년 홍콩 조차(租借)에 성공하자 관심이 뜸해진다. 그 틈을 미국이 파고든다.
    페리 제독은 1853년 섬을 방문해 저탄소(貯炭所) 부지를 구입한다.
    페리는 일본과의 교섭이 실패할 경우 보닌섬을 기항지로 확보할 심산이었다.
    영국이 미국의 부지 구입을 항의하자,
    미국은 "섬 영유권은 상금(尙今) 미확정이며, 선점 주장은 영국이 아니라 일본의 권리"라고 항변한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영유권을 들고 나온 것이다.

    미일(美日) 화친 조약으로 개항지가 열리면서 보닌섬 영유권 문제는 어정쩡한 현상 유지 상태가 된다.
    서구식 영토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막부는 영유권 분쟁을 남 일 보 듯했다.
    1862년 견미사절단 귀국으로 비로소 그 중요성에 눈뜬 막부는
    관리 파견, 행정구역 설정 등 '실효적 지배' 요건 충족에 나선다.

    1875년 메이지 신정부의 포고와 각국 승인으로 일본 영토로 확정된 이 섬이
    바로 '오가사와라제도(小笠原諸島)'이다.
    인구 3000의 작은 섬 몇 개가
    지금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의 3분의 1을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었다.

    일본의 오가사와라제도 영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본토에서 1000㎞나 떨어 져 일본인 주민 한 명 없었던 이 절해고도는
    ··의 상호 견제일본의 연안국 권리 행사가 없었다면
    (많은 태평양 도서가 그러하듯) 서구 제국의 영토로 낙착될 개연성이 있는 땅이었다.
    제국주의 영토 각축이 일상화된 유럽발(發) 질서를 앞마당에서 목도한 일본
    그에 대한 '저항과 편입'의 길항(拮抗)적 과제가 새 시대의 숙명임을 절감하고 애쓴 결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9/2018112903989.html



    유세형(jasir****)모바일에서 작성2018.11.3014:39:32신고
    일본역사 많이 배우고 글이 재미있다
    방창환(chba****)2018.11.3007:11:36신고
    일본이 독도 갖고 그렇게 설치는데는 다 배경이 있군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9/20181129039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