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여당도 아닌 야당(자유한국당)이 정부 예산 심사를 앞두고 초유의 출산 장려책을 내놨다.
임신부 30만명에게 2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카드를 지급하고,
출산 시 장려금 2000만원을 일시금으로 주자고 했다.
만 5세 이하 자녀가 있는 소득 하위 90% 가구에 10만원씩 주던 아동수당을
앞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만 12세)까지 소득과 관계없이 30만원씩 늘려서 지급하자는 제안도 했다.
모든 중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청소년 내일수당'을 신설하는 안도 포함됐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해마다 30조원씩은 써야 할 정책들이다.
화끈한 출산 장려책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돈 푼다고 저출산이 해결될 수 있을까.
심층적 원인 진단이 없는 접근은 '반짝 효과'를 낼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걸 입증하는 사례가 루마니아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전 대통령은 1966년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보통 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황당한 정책을 폈다.
우선 '만 40세 이전에는 아이를 4명 낳기 전까지는 낙태를 금지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것도 모자라 1977년에는 아이가 없는 가정에는 매월 세금을 물렸다.
1980년대 들어서는 아예 피임 기구, 피임약 판매를 법으로 금지했다.
그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국가 존속을 위협하는 사람들"이라며 출산을 강요했다.
이 무모한 방식이 잠깐은 먹혔다.
1966년 27만명이던 루마니아 신생아 수는 1967년 53만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69년 40만명대로, 1972년 30만명대로 다시 하락했다.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한 1989년 루마니아 고아원에는 10만명이 들어차 있었다.
고아원마다 영양실조, 질병, 장애가 만연했다.
독재자가 출산을 강요한 시대에 태어난 세대를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1.05명이었다.
올해 합계 출산율은 이보다 더 낮아 한 명 선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산부인과 도미노 폐업부터 국민연금 고갈까지
저출산으로 인한 재난이 우리 삶의 모든 부문에 순차적으로 닥칠 것이다.
그렇다고 출산율을 단기간에 억지로 끌어올리려 들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게
돼 있다.
저출산 원인은 취업, 결혼, 주택 마련,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숨어 있다.
그동안 아동수당을 도입한 현 정부를 비롯해 모든 정부는
늘 인프라를 키우는 대신 부모에게 돈을 주는 방식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려 했다.
"보육 인프라 개선이 현금 살포보다 우선"이라고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야당이
되레 여당보다 더한 현금 살포 정책을 들고나오니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