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얘야, 정말 미안하다 (명학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1. 16. 16:07

[일사일언] 얘야, 정말 미안하다


조선일보
                             
  •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          
    입력 2018.11.16 03:03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그 아이는 수시가 생기기 전, 수능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아이는 고1 내내 성실하게 학원을 다녔고 내 강의를 들은 기간은 5~6개월 정도였다.

    두 해가 지나고 수능을 하루 앞둔 날, 수업을 마치고 동료 강사들과 들른 치킨집에서 나는 그 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맥주를 나르고 있었다.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당연히 집에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어야 할 고3 수험생이
    술을 나르는 모습은 내게 의문과 분노를 동시에 일으켰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내일이 수능인데 여기서 뭐 하냐고, 수능 안 볼 거냐고.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완곡하게,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물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우물쭈물하다 그냥 자리를 떠버렸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치킨도 맥주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함께 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적당히 자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이가 나를 부르며 쫓아 나오더니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저 대학 안 가요. 대학도 안 가는데 수능은 뭐 하러 봐요.

    대학이 다가 아니잖아요. ,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여기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입에서 쏟아진 단어들뿐이다.

    그때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나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다.

    그것은 분노나 원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슬픔에 가까웠고, 내게 그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아이는 분명 눈물을 떨구었을 것이다.


    그 후 수능 성적이 필요 없는 수시가 생기더니,

    지금은 다시 수시를 폐지하고 수능에 올인하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

    수능이 정의라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수능도 수시도 아닌 다른 것을 말하는 어른들은 없다.


    그날 내 가슴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던 아이의 표정과 눈빛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나는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다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6/2018111600143.html


    김진권(rea****)2018.11.1613:02:27신고
    그 때 안락하게 수능보고 대학간 학생들 보다 훨씬 훌륭하게 되고 있을 수도 있다.
    인생은 긴 것이고, 어릴 때 어려움을 겪어 본다는 것은 긴 인생에 엄청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것이 그 학생에게 달린 문제이기는 하지만..
    남의 불행에 대해서 직접 도와주지 않을 거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는 것..
    하긴 신춘문예작가 이시라니, 남의 불행이라도 어떻게 이용해 보고 싶기는 하겠지만..
    그 자체가 소설일 수도 있겠네..
    박형숙(eaglefl****)2018.11.1608:19:47신고
    329자의 댓글을 썼는데 쓰기를 누르자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네요. 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6/20181116001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