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TV의 경제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로랑 브롱스키라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있다.
기업인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애로를 설득력 있게 얘기하는 사람이다.
영·독·불(英獨佛) 3국 중 프랑스만 유독 실업률이 높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브롱스키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실업률이 올 8월 기준으로 독일 3.4%, 영국 4%인 데 반해 프랑스는 9.3%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번 고용하면 회사가 어려워져도 내보내기가 어려우니
기업인들은 실적이 좋을 때도 쉽게 채용을 늘리지 않죠.
예전보다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실업급여가 풍족하니 재취업 의지도 약합니다."
프랑스는 노동계의 힘이 강하고 정규직 근로자의 지위가 철저히 보장된다.
이것이 일자리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게 브롱스키씨의 설명이다.
일부 질(質) 좋은 일자리가 견고하게 보호되니 젊은이들은 그쪽만 쳐다본다.
지금 프랑스에는 숙박·요식업계에 당장 채용 가능한 일자리 10만개가 비어 있다.
근로 조건이 열악하다며 서빙·배달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는데도 직원을 못 구해 식당들이 폐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영국과 독일에는 조건은 다소 열악해도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제도가 있다.
고용주가 필요할 때 불러서 일한 만큼 시급(時給)을 주는 영국의 '제로아워즈',
짧게 일하고 월 450유로(약 58만원) 이하를 받는 독일의 '미니잡'은
실업률을 낮추고 일자리를 여럿이 나눠 갖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노동계가 강성인 프랑스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일자리의 질과 개수를 동시에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개인은 좋은 일자리를 희망하지만, 정부는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상황판을 만든 것도 일단 숫자를 늘리려는 취지 아니었나.
일자리의 질을 먼저 강조하면 프랑스에서 볼 수 있듯,
고용주는 높은 비용 때문에 채용 인원을 늘리지 않게 마련이다.
결국 기존에 알짜 직업을 선점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사회적, 경제적 격차가 더 커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동 단체와 정규직의 기득권을 깨뜨리는 노동 개혁에 심혈을 쏟고 있다.
일자리의 질을 약간 낮춰야
개수를 늘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크롱 정부와 같은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뭘 하고 있나.
노동 단체나 강성 노조의 철옹성을 허물기는커녕 오히려 굳건하게 보호해주는 데 열심이다.
발 뻗고 살 수 있는 공무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해 수십만명의 청춘들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이래 놓고 일자리를 늘리려는 건 순전히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