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한현우 부장, 조선일보)

colorprom 2018. 8. 6. 13:53

[태평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조선일보
                             
             
입력 2018.08.06 03:15

삶의 결정권 없이 질주만 하니 UN 행복지수에서 55위 불과
'한 번 성공이 평생 좌우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행복도 가능

한현우 문화2부장
한현우 문화2부장


우리나라 대학생 중 81%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戰場)'이라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미국(40.4%), 중국(41.8%), 일본(13.8%) 학생들보다 한국이 월등히 많다.
설문은 '사활을 건 전장'을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설명했다.

반면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답한 한국 대학생은 12.8%였다. 일본은 이 수치가 75.7%나 됐다.

이 논문의 제목은 '저신뢰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의 치유를 위한 교육 방향'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교 때 이미 사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환경단체가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정부는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한국 대학생 9.7%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90%는 "생수를 사 먹거나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고 했다.

"명문대 입학시험에서 공정하게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나라 역시 한국(59.1%)이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는 전쟁터인데 정부나 대학은 믿을 수 없으니

1년간 20억원을 들여 대학입시 제도를 공론에 부쳐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대입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에 대한 지지가 가장 낮은 것도 그런 이유로 볼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냥 똑같은 시험 쳐서 성적 순으로 뽑는 게 그나마 공정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논문에 따르면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55개국 중 55위(2017년)였다.

2015년 47위에서 더 떨어졌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 요인 중 삶의 자기 결정권을 뜻하는 '생애 선택 자유'가 127위

매우 낮은 것이 눈에 띄었다.

왜 한국 학생들은 10대를 전쟁터에서 보내는가.

왜 4년제는 인서울에 지는 것이며 인서울은 SKY에 패한 것인가.

'좋은 대학에 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미신(迷信) 때문이다.


더 좋은 대학, 즉 강도 높은 행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거나 전문대를 갈 수도 있다는 '생애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라는

미국 에드 디너 교수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쓸데없는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정의를 소개한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고교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있는 곳은 being이다."

설령 고등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한다 해도, 한 번의 강도 높은 행복을 느낄 뿐이다.

그것이 평생의 행복을 좌우할 것처럼 부추기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고등학교도 전쟁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5/20180805021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