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8.04 03:02
피코 아이어의 에세이 '여행하지 않을 자유'는
휴가를 위해 인천공항의 출국자 대열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 떠나지 못해 속상한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책을 다섯 권쯤 냈을 때, 내게 생긴 증상이 하나 있는데,
책에서 '무엇 무엇 하지 않을'이란 말이 보이면 당장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유가 뭘까 마음을 헤아리니 살면서 '무엇 무엇 하느라' 지불한 기회비용과 실망감 때문이었다.
이유가 뭘까 마음을 헤아리니 살면서 '무엇 무엇 하느라' 지불한 기회비용과 실망감 때문이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자유에 대한 기준이 변한 것이다.
이제 나는 '해야 할'이 아니라 '하지 않을' 쪽의 자유가 한결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 나는 '해야 할'이 아니라 '하지 않을' 쪽의 자유가 한결 마음에 와 닿는다.
만나지 않을 자유, 듣지 않을 자유, 보지 않거나 선택하지 않을 자유 같은 것 말이다.
돈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우리는 종종 보기 싫은 상사나 선배 얼굴에 사표를 던지며
"망할!"이라 외치며 당당히 걸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속 시원한 이 행동을 우리가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망할) 돈 때문이다.
그래서 이걸 미국에서는 '퍽 유 머니(fuck you money)'라 부른다.
원할 때 직장을 그만둘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뜻한다.
돈을 어떻게 쓸지는 스스로 정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힘들게 깨달은 건,
돈은 가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쓸 때가 아니라,
나의 자아가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쓸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는 거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SNS 봐도,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이국 풍경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방 여행하는 법' 같은 책을 쓴 사람이 있을 정도다.
먼 곳으로 떠나야만 비로소 나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끝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큼 시급한 일이 또 있을까.
'아임 유어 맨'으로 알려진 가수 레너드 코언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이야말로
바깥의 모든 장소를 이해할 수 있는 원대한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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