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의 ‘박멸 투표’ 분위기, 북·미 회담 역시 생과 멸의 변주
정상들 결단해 문명국가로 가야
보수 야당도 오늘 가기 전 말하라 사랑했으나 오만한 방식이었다고
선거는 사약 아니면 어사화(御賜花)다. 냉혹하다.
좀 이상하기는 하다.
오늘 오전 10시에 개막될 북·미 정상회담 역시 생과 멸의 변주다.
‘거지국가’ 북한이 ‘부자국가’ 미국의 상대가 될까 낙관하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핵보유국 간 담판은 문법이 전혀 다르다.
미국 하버드대 그레이엄 엘리슨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나 핵무기만은 예외다’고 썼다(『예정된 전쟁』).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효과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면 대책이 없다.
핵 개발에 올인하던 김일성이 미국의 핵 보복을 걱정하자 참모가 말했다. ‘그러면 지구를 깨뜨리면 되지요!’ 공화국이 없는 지구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그 야만적 아첨에 김일성은 충만한 웃음을 날렸다
(『태영호 증언』).
엘리슨이 말한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마주 앉은 부자 미국과 거지 북한은 분리 불가능한 샴쌍둥이라고.
등뼈가 서로 붙은 한 몸, 지구를 깨뜨리자고 덤비면 함께 죽는 길밖에 없다. 공멸(共滅)이다.
전함에 육탄 돌격한 가미카제 특공대, 폭탄 조끼를 입고 자폭하는 이슬람 전사에겐
트럼프 특유의 화법, ‘너, 해고야!’가 가능하지만,
상호확증파괴를 무릅쓰는 핵탄두 자멸(自滅) 공격엔 아무 효력이 없다.
뜻밖에 멀리 오긴 했다.
자멸에서 생존으로 선회한 김정은의 돌연한 변심이
좌충우돌 트럼프의 뚝심을 핵 담판의 세기적 문법으로 격상시켰다.
몇 시간 후면 밝혀질 거다.
정전협정, 비핵화, 체제보장, 경제지원 패키지가 일괄 타결된다면
‘절멸 관계의 샴쌍둥이’는 공생의 집으로 주소를 옮긴다.
한국이 집주인이면 오죽 좋으랴만, 남·북·미 삼국협상은 아직 미지수,
신생(新生)을 확증하기엔 중국과 러시아의 눈초리가 매섭고, 변방을 맴도는 일본의 푸념도 성가시다.
담판과 선거의 공통점은 마음의 결단이다.
센토사 섬의 두 주역은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을 멸(滅)에서 생(生)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온갖 계산을 다 할 것이다.
불가역적 비핵화와 종전협정은 한반도를 이른바 ‘문명국가’로 진입시키는 입구다.
역으로 내일의 선거는 보수 야당을 생에서 멸의 극한지대로 내치는 출구다.
민주화 30년 만에 견제력이 소멸된 민주주의가 탄생할까 걱정이긴 하다.
생과 멸의 엇갈린 변주가 예상되는 오늘,
공생의 한반도 정치에 훗날 조금이라도 끼고 싶다면 보수정당 정치인들은 오늘이 가기 전에 말하라.
‘사랑했다’고, 그러나 ‘사랑의 방식이 오만했다’고.
누가 알랴, 아직 큰 부피로 남아 있는 부동층이 동정과 연민을 보내 겨우 소생할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