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총리로 재직 시, 자택에서 관악산 넘어 과천청사로 출근… ‘산신령’ 별명 생겨
⊙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원론》 1974년 간행… 지금까지 전면개정 10판 찍어.
⊙ “조순 후보의 눈썹이 희고 강직하니 포청천으로 하는 게 어때요?”
⊙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 최저임금 강요하면 해를 못 넘겨.
⊙ “기본적으로 북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
⊙ “보수 기치를 든 사람, 보이지 않아”
조순(趙淳) 전 부총리가 10여 년 전에 쓴 〈율곡전서라는 책〉이라는 짧은 글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전기는 소설보다 재미있다는 말이 있는데,
조순은 인간의 삶이 소설보다 더 위대하고 극적이라는 믿음을 분명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생화’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1967~1988년)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초대 학장(1975~1979년),
한때 그는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혔다.
조순 전 부총리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봉천동에서 살았다. 지금은 행운동으로 동명(洞名)이 바뀌었다.
1980년대 말 그가 부총리로 재직할 때
기자와 만난 그의 눈썹은 여전히 백미(白眉)였다.
奉天學人과 산신령, 골프채 이야기
서울 관악구 행운동 조순 부총리의 자택에 걸려 있는 문패. |
“점심? 어… 밥하고 (하하하) 된장찌개하고, 또…
— 아침 식단하고 달랐습니까.
“아침 식사는 내가 해 먹고요, 해줄 사람도 없고…
— 골프는 치십니까.
“골프 칠 기회가 있었는데요,
또 한 번 누가 골프채를 보내왔어요. 그렇게 고급은 아니더구먼. 한참 (집에) 오래 두었어요.
— 저도 골프채를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아, 그럼요. (골프는) 좋은 운동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풀브라이트 한국 위원입니다.
풀브라이트 위원회에다 ‘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괜찮은 학교에 보내줄 수 없느냐’고 청을 했더니
— 미국에서 골프는 대중화되고 값도 싸다고 하던데요.
“아마… (미국 교수들은) 지금도 안 할 겁니다.”
자서전과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원론》
조순 부총리 서재 책장에 꽂혀 있는 《경제학원론》. 1 974년 첫 발간 때는 저자가 조순이었지만 지금은 조순·정운찬·전성인·김영식 등 4인 공저가 됐다. |
“하루에 커피 한 잔 내지 두 잔을 마십니다. 많이 안 마시는 편이지요.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 않아요.
서울시장 후보 할 적에도 저녁 9시가 넘으면 잤어요.
— 운동은 안 하시나요.
“젊었을 때 가정 요가를 배웠는데 지금도 해요. 이부자리 위에서 해요.”
— 침대에서 안 주무시고요.
“침대가 있지요. 침대 밑에 요를 하나 깔아 놓고 요가를 합니다. 오래는 안 해요. 한 40~50분 합니다.
한때는 등산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전국 유명 산은 몇 번씩 다 가봤으니까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 그는 관악산·북한산·화악산·설악산의 만개한 봄꽃, 여름의 짙은 녹음,
기자는 전기를 예찬한 선생의 글이 떠올라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 직접 자서전을 쓰지는 않으셨나요.
“자서전… 안 썼어요. 없어요.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의 선배인 데이비드 흄이라는 분이 있어요.
조순 부총리. 지난 2014년 《경제학원론》 발간 40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제1편 경제학과 그 방법론
제2편 수요, 공급의 이론
제3편 소비자 이론
제4편 생산이론
제5편 시장형태와 산업지식
제6편 분배이론
제7편 경쟁시장의 공과와 미시경제정책
제8편 국민소득 결정이론
제9편 화폐금융 이론과 정책
제10편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관한 이론
제11편 국제경제이론
제12편 성장 및 발전이론
미국 최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사무엘슨이 쓴 《경제학원론》을 모델로 집필한 모범적인 교재인 《경제학원론》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들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생의 필독서가 된 것은 물론이다.
지금은 10판(2013년 8월 간행)이 나왔고
— 《경제학원론》은 출간한 지 4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많이 찍었어요. 얼마나 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때 제자에게 뭐라고 답하셨나요.
“‘아마 팔릴 거야’라고 했지요.
—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생이 다 봤으니까요. 저도 ‘경제학개론’ 수업을 그 책으로 공부했어요.
“책이 나올 때 정운찬 교수가 그 책을 위해 참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이후에 정운찬이가 (서울대) 총장이 되고 바빠져서 제자 전성인이라고, 지금은 홍익대 교수를 하고 있는데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나오고 똑똑해요. 이후 서울대 김영식 교수가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랐어요.”
趙淳과 케인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가 떠오른다. 또 1982년 자신이 직접 《J.M.케인즈》(유풍출판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주장으로 경제학의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불황이 찾아왔을 때 특별한 대책 없이 기다리다 보면 경기가 순환된다고 소극적으로 생각했다. 조 부총리의 말이다. ‘경제학원론’이란 과목이 있긴 했어도 전부 마르크스였어요. 좌익 학생이 다 퇴출된 후에도 교재는 마르크스 경제학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케인스 이론이란 학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둘째 치고 케인스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영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한 토머스 하디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원서로 읽으며 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 나중 케인스 책을 번역도 했어요.” 케인스 이전에는 거시경제학이란 게 없었습니다. 케인스가 만들어 낸 거예요. 케인스 경제학이란, 숲의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바라보자는 것이죠. 미시경제학이 나무를 보는 것이라면 거시경제학은 숲을 보는 것이지요. 이 숲이 아주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런 생각을 케인스가 한 것이죠.” |
아버지 조정재와 숙부 조평재
조순은 1928년 2월 1일 강원도 강릉시 구정(邱井)면 학산(鶴山)리에서 태어났다.
— 아버님한테 천자문, 명심보감, 동몽선습을 배운 거죠.
“아뇨. 안 가르치셨어요.
— 일본 책인가요.
“한국 책이지요.
그러면서 조순 부총리는 책 서문을 빠르게 외기 시작했다.
“황석공소서 육편은 안전한열전에 황석공이, 비교소수 자방소서니,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황석공소서’의 여섯 편은
조순 부총리의 말이다.
“아주 글이 좋아요. 서문을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배웠어요.
— 유학자는 아니셨네요.
“유학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억지로 분류한다면 뭐 그렇지요.”
조정재의 동생인 평재(趙平載)는 당시 강릉 지방에서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숙부(조평재)께서 (강릉서) 서울로 오셨을 때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어요.
숙부 말씀이 ‘처음에는 몰랐지. 난 그래도 한문을 잘했잖아. 한문을 잘하니까 별문제가 없었어’ 그랬어요.
— 따라 다닌다는 의미는.
“그 양반 가시는 곳마다 갔습니다. 하하하!”
— 의뢰인을 만난다거나 어떤 행사가 있을 때 가셨다는 의미입니까.
“아니요, 그 양반이 밥을 먹여주니까….”
— 외람된 표현입니다만, 집안이 다 머리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율곡전서》와 육사 영어교관, 그리고 한자교육
조순 부총리의 서재에서 바라본 앞마당 모습. 제법 초여름 녹음이 우거졌다. |
— 어린 시절, 존경하던 스승은 누군가요.
“보통학교(초등) 때는 일정(日政) 시절이라 일본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았어요.
율곡은 대단한 충신이자 애국자였습니다.
—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1952~1957년) 영어를 직접 가르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정호용(鄭鎬溶)… 그 양반들하고 아주 친했습니다. 잘 지냈습니다.
당시 육사 11기, 12기 생도들은 대체로 1932년생이 많았다.
— 11기생 중 가장 특출한 학생은 누구였나요.
“아주 머리 좋은 이가 한 명 있었어요. 김성진(金聖鎭)이라고 특출하게 공부를 잘했고 학생부대장도 했지요. 전두환 대통령도 나한테 그랬어요. ‘(김)성진이는 보통 대우를 해선 안 됩니다. 육사의 심벌(상징) 아닙니까’ 그랬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육사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던 김성진은
— 육사 시절에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은 서로 친했습니까.
“지역별로는 전두환이는 합천 출신이고 노태우는 대구니까 그렇게 가깝다고 볼 수는 없었지.
— 노태우 대통령은요.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당시에도 인상적이었나요.
“그때는 잘 몰랐지요.”
— 부총리께서는 영어를 가르치셨지만 한자 교육도 강조해 오셨어요.
“우선 한자를 배우고 쓸 수 있어야 동북아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또 (한자를 몰라) 옛 신문을 못 읽으니 사람의 지식과 지능이 성숙해지나요. 아주 완전히 우민정책입니다.
말이 부족하면 좋은 생각을 안출(案出)하고 정리하며 표현하고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1995년 지방선거와 6·13지방선거
1995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조순 서울시장 후보. 젊은 세대들이 많이 모이는 여의도, 명동, 대학로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유세 때 포청천 시장의 이미지를 살리려 포청천 모델을 등장시켰다. |
당시 선거에서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TV 토론과 연설 덕분이었다.
— 어떻게 출마를 결심하셨나요.
“난 선거에 나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 평생 강단에 섰는데 연설을 잘하셨겠지요.
“아뇨. 강단에 서는 것과는 달라요. (여성 두 명이)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해도 안 돼요.
— 그때 그 여성이 정미홍씨, 아닌가요.
“맞아요. 정미홍씨가 기여를 많이 했어요.”
KBS 뉴스 앵커 출신의 그녀는 당시 조순 캠프의 부대변인을 맡아 미디어 선거를 지휘했었다.
— ‘포청천’ 이미지는 캠프에서 구상한 것인가요.
“아마 캠프였겠지요. 정직하고 강직해서 포청천과 같다…. (몸을 뒤로 돌리며) 저기, 포청천이 있어요.”
부총리의 서재 뒤편 쇠로 만들어진 포청천 상(像)이 눈에 띄었다. 직접 만져 보았는데 꽤 무거웠다.
“경기고 총동창회장을 지내신 김집(金潗·체육부 장관 역임) 선배가
포청천 캐릭터의 등장은 캠프 내 한 자원봉사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조순 부총리와는 6·13지방선거 전에 만났기에 이 질문을 던져야 했다.
— 며칠 후 6·13지방선거가 있습니다. 후보를 정하셨나요.
“아뇨, 안 정했습니다. 선거 홍보물이 저기 있는데 봐야지요.”
—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참…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너무 떨어졌어요.
조순 부총리는 “남은 힘이 있다면 (적폐청산을) 해도 좋은데
“박근혜씨가 잘못하고, 이명박씨가 잘못하고… 그것은 그것대로 처리하는 데가 있잖아요.
— 정계를 떠나신 뒤 계속 여의도를 관망하고 계신지요.
“관망은 했지만… 한나라당이란 당명을 내가 만들었잖습니까.
— 한나라당 당명이 사라질 때 섭섭하셨습니까.
“박근혜씨가 그렇게 했는데…, 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많이 섭섭하셨나 봐요.
“하하하!”
— 지방선거 이후 자유한국당 운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나라의 뼈대지요.
— 제대로 된 보수의 정체성을 내건 정당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물론이죠. 그것 없이는 국가가 제대로 잘 안 됩니다. 그게 있어야 해요.
소득주도형 성장정책과 ‘중소벤처기업부’
2012년 6월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강당에서 조순 부총리의 제자인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연구소를 창립하자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오른쪽부터 조순, 정운찬, 정 총리 부인 최선주씨, 김영환·김성태 의원. |
“소득주도형 성장이란 이론은 경제이론이 아니거든요. 저는 경제이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소득주도 성장론은 ‘분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 갈래가 아닌가요.
“분배라는 것은요, 어떤 소득이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4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때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일련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홍장표 수석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가장 일선에서 지휘하고 있는데,
—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생각들이 변형윤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글쎄, 난….”
— 집권 1년 차인데 분배상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성급하다는 견해도 있어요.
“좋은 정책을 쓰면서 기다리면 좋지만, 좋지 않은 정책을 가지고 아무리 기다려 봐도 좋지 않을 겁니다.
— 빨리 폐기해야 되겠네요.
“내가 보기에는 달리 생각해야 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제에이일(제일) 필요한 것은 이 나라 창업이 이뤄져야 돼요.
2014년 중국에서 하루 1만 개 업체가 창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중국의 창업정책에 대해 배울 점은 무얼까요.
“정부만이 아니라 학교, 기업이 동시에 창업에 적극 나서니 아이디어가 나오지요.”
— 현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재벌 없는 경제가 잘되는 경제는 얼마든지 있지만 중소기업 없는 경제는 절대 안 됩니다.
“옳은 방법으로 하지 않았으니까 안 따라온 것이죠”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989년 10월 7일 경과위의 경제기획원 감사가 끝난 뒤 조순 부총리와 유준상 경제과학위원장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다. |
“자영업자나 중소기업한테 최저임금 강요를 하면 해를 못 넘겨요.
— 오늘 자(6월 8일) 《조선일보》를 보니 주52시간 근로시간과 관련,
“아이고… 기업들이 부담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 그동안 너무 안 따라와서 강제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요.
“옳은 방법으로 하지 않았으니까 안 따라온 것이죠.”
— 현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 성장정책 과제
“하나씩 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은 기업에 맡겨야 됩니다.
— 부총리 시절, 경제 기사를 읽어 봤습니다.
“맞아요. 지금도 유효해요.
— 북핵 문제만 여쭙고 물러나겠습니다.
“난 기본적으로 북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장래는 지금 노선만 잘 추진하면 기본적으로 밝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