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 명저를 쓴 한동석(1911~1968)은 함경도가 고향이었다.
6·25 때 월남하여 공산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는 서울에 살면서 '황제내경' '운기편'을 1만 독(讀)이나 한 뒤에 영발이 생겼다.
그 뒤에 케네디 암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예언하여 맞히기도 하였다.
6·25도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임진강의 물이 넘쳐 홍수가 난 것이 6·25이다.
이 물이 남한을 쓸고 내려가다가 대구라고 하는 큰 언덕(邱)에서 물이 멈췄다.
그래서 대구 이남이 보존된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한동석의 이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대구·경북만 빨간색이고 나머지 지역은 거의 파란색의 물결이 덮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구·경북이 고립된 섬이 된 것처럼 보였다.
민주당의 파란 물결이 전국을 휩쓸고 내려가며 뒤덮었지만
대구 팔공산(八公山)만 그 물결 속에서 태산교악(泰山喬嶽)처럼 고개를 들고 있다고나 할까.
팔공산이라! 나는 호남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그동안 팔공산을 건성으로 알았었다.
그러다가 올봄에 3박4일간 어느 도인의 안내를 받아 팔공산의 기도처들을 자세하게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갓바위에 올라가는 왕복 2시간여의 돌 계단 길도 좋았다. 몸에 쌓인 탁기가 자동적으로 빠지는 길이었다.
동화사(桐華寺) 법당 터도 봉황 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옛날 어른들은 이처럼 절묘한 자리를 귀신같이 알고 잡을 수 있었는지!
법당 계단 입구의 봉황 부리처럼 튀어나온 바위를 어루만져 보면서
선인들의 터 잡는 안목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원효가 도를 통했다는 오도암(悟道菴) 뒤에 높게 솟은 바위절벽인 청운대(靑雲臺)를 올려다보니까
'속세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빨리 산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울려 왔다.
1193m의 바위산인 팔공산은 산 전체에 영기가 가득한 기도발의 산이었다.
굳이 미국 세도나까지 갈 필요가 없다.
보수는 팔공산을 등산하면서 보수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