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마음을 다해 대충 산다는 것 (백영옥, 조선일보)

colorprom 2018. 6. 9. 16:06

[백영옥의 말과 글] [50] 마음을 다해 대충 산다는 것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              
    입력 2018.06.09 03:12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남아 있는 에너지가 0에 가까워졌을 때 사표를 낸 적이 있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씹는 것조차 싫어 우유만 마셨다.

    침대와 혼연일체 된 나날들, 친구들이 말했다.

    "힘내! 힘내야지!"

    걱정돼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란 거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내내 힘이 더 빠졌다.

    이곳이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깊은 바닥이 있어 그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랄까.

    그때 누군가 내게 "힘 빼~"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힘 빼고, 우연을 한 번 기다려보자,

    꼬이고 꼬였을 때는 그냥 놔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물에 빠졌을 때 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리면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다. 그럴 땐 힘을 빼야 비로소 물 위에 둥둥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열심히 산다. 쥐어짜듯, 있는 힘껏 모드다.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구력이 필요한 걸까.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은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책의 부제(副題)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단골로 등장했던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 않을까 해요. 저는 반쯤 놀이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더군."

    이 말은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대충 산다는 말'은

    1~2년 사이 상권(商圈)의 지형이 바뀔 정도로 많은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아님 말고~'의 유연함이 있어야

    이 불확실한 시대에 헤엄치듯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뭐든 힘주는 것보다 힘 빼는 게 더 힘든 일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8/20180608036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