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5.29 03:11
나는 책을 쓰는 사람이라 제법 갑질을 많이 하며 산다.
출판계약서에는 저자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이라 적혀 있다.
계약 관계의 주도권을 지닌 쪽을 갑, 그 반대편을 을로 적는 게 관행이라지만
사실 출판사가 저자라고 예우해줘서 그렇지 저자가 대놓고 갑질을 해댈 수 있는 계제는 결코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갑질이 도를 넘는다 싶더니
요즘 우리 사회의 갑질이 도를 넘는다 싶더니
급기야 한 재벌 총수 가족의 비행이 국민적 분노의 뇌관을 건드렸다.
그러나 가진 자의 갑질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우리 사회에는 유달리 위아래를 구분하고 수치로 줄을 세우는 '갑을 문화'가 팽배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유달리 위아래를 구분하고 수치로 줄을 세우는 '갑을 문화'가 팽배해 있다.
나보다 덜 가졌거나 아래라고 판단되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저질 문화가 있다.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조회 시간에 나는 딱 한 번 작심하고 직원들을 겁박한 적이 있다.
누구든 정규직이랍시고 비정규직 직원에게 갑질을 하다가 발각되면
그 즉시 해고하고 나도 사표를 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에서 부시먼(Bushman)을 연구한 캐나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 교수의 일화다.
그 지역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하려 족장에게 선물을 했단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족장의 표정이 영 떨떠름하더란다.
그 후 마을의 다른 사람 집을 방문할 때마다 똑같은 물건이 있는 걸 보고서야
선물이 맘에 들지 않아 그랬구나 생각했단다.
실상은 딴판이었다. 부시먼 문화에서는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혼자 소유하는 게 부끄러운 일 이란다.
그래서 선물을 받으면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계속 남에게 건네준단다.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남보다 많이 움켜쥔 건 자랑이 아니라 수치다.
물론 남보다 열심히 일해 정당하게 얻은 부와 특권이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잘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세상일에는 필연 못지않게 우연도 중요하다.
갑질은 물론 갑티를 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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