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엄마 된 딸이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유 (송미옥1, 중앙일보)

colorprom 2018. 4. 1. 19:41


엄마 된 딸이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유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

남편을 떠나 보내고 고택과 작은도서관을 관리하며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어느 날 7살 난 딸이 물었다. "엄마는 일이 좋아, 우리가 좋아?"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어느 날 7살 난 딸이 물었다. "엄마는 일이 좋아, 우리가 좋아?"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아이들이 어린 시절, 밤낮없이 일만 하는 우리에게 어느 날 7살 난 딸이 물었다.
“엄마는 일이 좋아, 우리가 좋아? 엄마는 일만 사랑하고 우리는 사랑을 안 해줘, 미워.”
 
우습기도 하고 당황도 되고 어이도 없어서 “사랑이 뭔데?” 하고 물으니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맛있는 것도 맨날 해주는 거야"란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들어가서 TV나 봐”라며 안아주고 쪽쪽 입을 맞추며 등을 밀어 쫓아내고는
또 일을 했다.
 
그 말이 맞긴 하지. 아침밥이 저녁까지 이어지고 짜장면이 주식이 되다시피 시켜먹으며 왜 일만 하는지,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에겐 이해를 시켜줄 세월이 필요했다.
겨우 겨우 빚을 청산하고 빚 없이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때,
일해야 사랑도 밥도 보이던 그런 시간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식들이 잘 커주는 고마움과 죄책감에
“우리 아이들은 제 혼자 큰 거예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하는 지인과의 대화를 들었는지
가끔 “엄마, 우린 엄마 없이도 나 혼자 자란 거지” 하며 스스로 대견해 했다.
 
힘든 일 마치고 들어와 잠든 아이들의 이마를 만져보며 혹시 아프지나 않은지, 밥은 잘 먹었는지,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 그저 걱정만 하다 '미안해, 미안해'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엄마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네가 자라 어미가 되면 스스로 알겠지' 하며 지내온 세월에 어느새 두 아이 모두 엄마, 아빠가 되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소풍 갈 때 맛없는 김밥은 절대 안 싸줄 거야."
엄마처럼은 모든 게 다 싫다던 딸이
“엄마, 나 요즘 엄마랑 너무 똑같이 사는 것 같아. 일하는 것 빼고는” 하며 깔깔 웃는다.
 
엄마처럼은 모든 게 다 싫다던 딸은 "엄마, 나 요즘 엄마랑 너무 똑같이 사는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엄마처럼은 모든 게 다 싫다던 딸은 "엄마, 나 요즘 엄마랑 너무 똑같이 사는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시집가서 자식을 낳으면 날마다 함께 있어 줄 것이고
공부도 안 시키고 줄넘기도 안 시키고 늦잠 잔다고 혼내지도 않을 거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할 것이라더니…. 좋은 남편 만나 여유롭게 사는 모습에 고맙고 행복한 건 나인데,
가끔 만나면 슬그머니 뒤에서 안으며 말한다. “엄마, 미안해. 모든 게 다 그냥 미안해.”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느 날은 그 말에 둘이서 마주 보며 웃지만,
어느 땐 마주 보며 등을 토닥거려준다.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야.”
 
손녀 딸 "할머니, 우리 엄마 자식교육 잘 못 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딸에게 축하선물을 사주고 같이 점심을 먹는데, 아이가 나를 부른다.
“할머니, 우리 엄마는 자식 교육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풋"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왜?”라고 물으니
손녀가 하는 말.

“다른 엄마들은 다 일하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만 있고요.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따라 다니며 못하게 해요.
공부는 정말 하기 싫은데 울어도 막 혼내면서 하라고 해요. 부모는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랬구나. 그래도 넌 할머니가 이렇게 가끔 놀아주잖아. 영애 엄마는 할머니가 없어서 이런 말도 못했단다"
하며 꼭 안아주니 “그렇긴 해요”라며 웃는다.
 
먼 훗날 내 딸이 할머니가 되고 또 네가 엄마 되면 엄마의 마음을 그땐 알아주겠지.
내 아이가 지금 내게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하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가 넘치고 행복했던 시간은
모두가 함께 복작거리며 살던 가난한 젊은 시절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딸아이의 행복한 '지금' 시간을 마음에 담아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출처: 중앙일보] 엄마 된 딸이 고해성사하듯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