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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니어스 (김성현,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 28. 18:06

[영화 리뷰] 지니어스

헤밍웨이·토머스 울프도 그가 없었다면
  • 김성현

    발행일 : 2017.04.05 / 문화 A21 면

     

     "뉴욕의 편집자 놈들은 하나같이 내 글을 싫어해요."

    스콧 피츠제럴드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소설가들과 작업해온 출판 편집자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의 책상에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한 신인 작가의 원고 뭉치가 날아온다.

    다른 출판사들로부터 모조리 퇴짜를 맞은 소설가 '토머스 울프'(주드 로)의 작품이다.


    '하나의 돌, 하나의 잎, 하나의 문에 관하여. 그리고 잊힌 모든 얼굴에 관하여.'

    낯설지만 매혹적인 도입부 구절에 매료된 퍼킨스

    출퇴근 만원 열차에서도 울프의 원고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4쪽을 넘기는 동안 단락 한 번 바뀌지 않는 지독한 난문(難文)에 퍼킨스

    "이 괴물 같은 문장과의 힘겨루기"라고 넌더리를 내면서도 결국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울프는 난생처음 선인세(先印稅) 500달러를 받고 감격에 겨워한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지니어스(Genius·감독 마이클 그랜디지)'는

    피츠제럴드헤밍웨이, 토머스 울프 같은 소설가들의 실제 편집자였던

    맥스 퍼킨스(1884~1947)의 실화(實話)에 바탕한 영화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토머스 울프의 '천사여, 고향을 보라' 같은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라는 출판계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퍼킨스

    20세기 미국 문학사를 수놓았던 걸작들의 진가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던 감식안의 소유자였던 셈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직업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1920년대 미국 문단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문학적 향취는 이 영화의 예견된 장점이다.

    원고가 뭉텅이로 잘려나갈 때마다 "심장이 찢겨나가는 기분"이라고 괴로워하는 울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아내를 돌보느라 원고 한 줄 쓰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피츠제럴드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헤밍웨이스페인 내전에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삶을 위한 투쟁 말고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친다.

    "맨해튼은 소음으로 가득한 섬" 같은 문학적 대사들도 이 영화에서는 일상적 대화처럼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원고지의 예술인 문학을 영상 예술인 스크린으로 옮기다 보니

    불가피하게 장르적 이질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극적인 기승전결이라는 관점에서도 다소 단조롭고 평면적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울프의 신경질적 연인 '엘린' 역의 니콜 키드먼,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힌 '피츠제럴드'의 가이 피어스,

    호언장담으로 가득한 '헤밍웨이' 역을 맡은 도미닉 웨스트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묘미다.


    무엇보다 영화는 1시간 44분의 단기 속성 과정으로 '미국 현대 문학사'를 공부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기고자:김성현  본문자수:1376   표/그림/사진 유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