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뉴스로책읽기] 돌부처의 심성을 회복하자
입력 : 2017.03.14 03:03
[39] 가나화랑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 도록'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을 드디어 방문했다.
박수근(1914~1965) 화백은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12세 때 처음 접한 밀레를 흠모했던 박 화백도 궁핍한 삶의 무게를 말없이 감내하는 순박한 사람들을 그렸다.
노인과 아낙네, 행상인, 어린이가 그의 주요 인물이다.
부인 김복순 여사를 빨래터에서 만났기에 '빨래터' 그림도 세 점이나 되는데
작품 속 여인들은 무성(無性)적인 듯하면서도 무한한 포용과 인내로 생명을 배양하는 모성의 표상이다.
미술 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무채색의 화강암 표면 같은 박 화백 회화의 독특한 선과 질감은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캔버스에 가로 세로로 번갈아가며 10회 이상 유화물감을 칠해서
물감이 마르면 요철의 커다란 덩어리는 걷어내고 그 위에 선묘(線描)의 직선으로 대상을 묘사해서(…)
마애불 효과"를 창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한국 미술 시장에서 단연 최고가에 거래되는 '국민 화가'이지만
생전에는 가족 끼니를 대기도 어려워 가족이 굶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때도 있었고,
중학생 아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 팔아서 동네 외상값을 갚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유통되는 거의 유일한 경로는 반도화랑이었다.
그곳에서 1960년대에 근무했던 '미스 박'(박명자 전 화랑협회 회장)에게
박 화백은 그녀가 결혼하면 그림을 하나 그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화백이 51세에 타계하고 이듬해 그녀가 결혼하자
김복순 여사가 유작 중에서 '굴비'라는 작품을 선물해 남편의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후에 현대화랑을 열면서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실력자가 된 박명자 회장은
후에 현대화랑을 열면서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실력자가 된 박명자 회장은
박수근미술관이 개관할 때 작품 '굴비'를 비롯해 김환기, 장욱진, 천경자, 이응노, 박고석, 이대원, 최영림 등 거장들의 그림도 함께 기증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연상케 하는 미담이다.
박 화백은 화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화백은 화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궁핍하던 1950~ 1960년대에는 돌부처의 어진 마음을 지녔었는데
지금은 질시와 증오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리 모두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3/2017031302925.html
'멋진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구관이 명관? - '징비록' (조선일보) (0) | 2017.03.21 |
---|---|
[영화][거짓말]It's human to lie (이미도 번역가, 조선일보) (0) | 2017.03.18 |
[38]내년 봄 서울 하늘엔 어떤 깃발이?-'꽃제비의 소원' (조선일보) (0) | 2017.03.07 |
[시] 이른봄의 서정 (김소엽) (0) | 2017.03.07 |
[영화]'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고비용 때문에 사라진 십자가 처형 (남정욱 교수, 조선일보) (0) | 2017.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