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8 03:15
밥집이나 술자리에서 갑자기 만나 나이를 따져 형님, 동생, 친구가 되는 수가 있다.
시간을 두고 겪어보지 않은 채로 맺는 형님, 동생 관계는 오래 못 가는 수가 많다.
이해타산의 문제에 걸리면 이런 관계들은 결별하기 마련이다.
이해 문제 앞에서 결별을 몇 번 경험하다 보면 형님, 동생 맺는 데에 신중해진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안동의 유서 깊은 양반 집안 후손들과 교류를 하면서 인상 깊은 대목이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안동의 유서 깊은 양반 집안 후손들과 교류를 하면서 인상 깊은 대목이
'허교(許交)'라는 절차이다. '사귐을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만나자마자 바로 친구 관계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품과 학문을 겪어본 뒤에 본격적인 관계 맺기를 한다.
깐깐한 장치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쁜 절차일 수 있다.
'허교'를 하기 전에는 본격적인 사귐이라고 볼 수 없다.
허교 이후에는 말도 편하게 하고 속마음을 터 놓는다.
예산을 배분하는 노른자위 장관 자리인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고 나서
예산을 배분하는 노른자위 장관 자리인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고 나서
억대 연봉의 로펌으로 가지 않고, 안동 골짜기의 도산서원으로 내려간 인물이 김병일(73)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퇴계 선생을 흠모해서
인생 말년에라도 퇴계 선생 가까이에 살고 싶은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양반이 무보수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인생 이모작 장소가
도산서원 옆에 자리 잡은 선비문화수련원이다.
김 이사장이 지난해 여름 아침에 선비수련원에서 자고 일어난 필자를
수련원 뒤의 회우정(會友亭)으로 데리고 갔다.
정자에는 퇴계 선생 한시가 걸려 있었다.
'공자 문하
에서 친구 사귀는 도리는(孔門論會友)
학문을 매개로 사귀고 친구의 인격을 고양시켜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하며(以文仍輔仁),
시장 바닥의 사귐과는 다른 것이다(非如市道交).
시장 바닥의 친구 관계는 서로 이익이 다하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된다(利盡成路人).'
마지막 구절인 '이진성로인(利盡成路人)'이 가슴에 묵직하게 남았다.
옛날에도 그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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