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좋아하는 글 중에 ‘어느 늙은 수녀의 기도’라는 글이 있다.
17세기 어느 수녀가 썼다고 하는데 정말 오늘날에 새겨들어도 참 좋은 말인 듯하다.
그 중 특히
‘아무 때나 아무것에나 꼭 한마디 해야 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라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쳤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참 아는 것이 많고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칠순을 넘긴 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옛날에는 사람 셋이 가면 그 중 한명은 꼭 선생이 있어서 배울 게 있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여기 시골 경로당에서도 사람 셋이 가면 셋 다 의사다, 의사!” 라고.
그 정도로 아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꼭 그것을 풀어주고자 한 마디씩 한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그냥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일 뿐인데도 꼭 답을 제시하고
그럴 때는 그래야한다고 행동지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해도 정말 혜안이었을 지는 의문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힐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여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진즉 이 글귀를 알았더라면 실수하지 않았을 걸 하는 일이 나도 있다.
후배랑 한 소설의 작가를 놓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게 너무나 확실해서,
나도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어림도 없다는 듯이 약간 피식 웃기까지 했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 후배가 말한 작가가 맞았던 것이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내 기억이, 내 지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한 번도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세상의 많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혹시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생각만 가져도
세상은 참 많이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 기억이 이전보다 더 총명해 질 수는 없고,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향기가 잃어버리는 기억만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충고를 더 해 주고 싶을수록 이 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내가 아는 이 현명하고 고귀한 지혜를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주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꼭 한 마디씩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는 걸리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불교신문 2837호/ 8월1일자]
강미정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