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노년]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작자미상)

colorprom 2017. 12. 13. 12:15

2017년 12월 12일, 신우회 송년회에서 구목사님이 강론 대신 나누어주신 글.

오늘 인터넷에서 이 글과 불교신문에 실린 강미정씨 글을 찾아 올린다.

정말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처음 이 글 읽었을 때만 해도 감동이었는데...명심하리라 했는데...

환갑을 넘긴 지금, 정말 벽에 붙여놓고 행동강령으로 외워야 할 듯하다!!!  *^^*


2017년 12월 13일에, 환갑 + 1살된 (이타)재갈 이경화 (꽝꽝꽝!!!  *^^*)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 작자 미상(17세기 수녀)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에서




어느 늙은 수녀의 기도   (불교신문)


강미정

  • 승인 2012.08.01 07:18
  
 

평소에 좋아하는 글 중에 ‘어느 늙은 수녀의 기도’라는 글이 있다.

17세기 어느 수녀가 썼다고 하는데 정말 오늘날에 새겨들어도 참 좋은 말인 듯하다.

그 중 특히

‘아무 때나 아무것에나 꼭 한마디 해야 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라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쳤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참 아는 것이 많고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칠순을 넘긴 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옛날에는 사람 셋이 가면 그 중 한명은 꼭 선생이 있어서 배울 게 있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여기 시골 경로당에서도 사람 셋이 가면 셋 다 의사다, 의사!” 라고.

그 정도로 아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꼭 그것을 풀어주고자 한 마디씩 한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그냥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일 뿐인데도 꼭 답을 제시하고

그럴 때는 그래야한다고 행동지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해도 정말 혜안이었을 지는 의문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힐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여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진즉 이 글귀를 알았더라면 실수하지 않았을 걸 하는 일이 나도 있다.


후배랑 한 소설의 작가를 놓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게 너무나 확실해서,

나도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어림도 없다는 듯이 약간 피식 웃기까지 했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 후배가 말한 작가가 맞았던 것이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내 기억이, 내 지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한 번도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세상의 많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혹시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생각만 가져도

세상은 참 많이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 기억이 이전보다 더 총명해 질 수는 없고,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향기가 잃어버리는 기억만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충고를 더 해 주고 싶을수록 이 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래서 내가 아는 이 현명하고 고귀한 지혜를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주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꼭 한 마디씩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는 걸리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불교신문 2837호/ 8월1일자]

강미정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