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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결혼의 해피엔딩은 '졸혼'? (조선일보)

colorprom 2017. 10. 30. 13:24

결혼의 해피엔딩은 '졸혼'?

최근 많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졸혼(卒婚)'을 다루고,
법원 이혼조정에서 졸혼을 선택한 부부도 늘고 있다.
졸혼은 진정 결혼의 아름다운 결말이 될 수 있을까?

  •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심지우


                    

입력 : 2017.10.30 08:53 | 수정 : 2017.10.30 08:54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결혼해 본 사람은 안다. 왕자와 공주에게 펼쳐질 운명을.

신혼 초 의미 없는 기 싸움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수십 년간 서로에게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맞출 것을 맞춰 간다.

우여곡절 끝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상태에서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조선DB

만약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미운 정'만 남았다면,

부부는 자식들 다 키운 뒤 나 자신을 찾겠다며 '황혼이혼'이라는 선택지를 맞이한다.

최근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졸혼(卒婚)'이다.

[신문으로 배우는 실용한자] 졸혼(卒婚)

하나의 '트렌드'가 된 졸혼


지난해 배우 백일섭 씨의 졸혼 고백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뒤, 졸혼은 TV 프로그램의 단골 아이템이 됐다. 백일섭은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살림남2)에 '졸혼남'으로 등장해 뒤늦게 살림하는 법을 익히며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고, MBC 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졸혼 선언으로

가정 붕괴 위기에 처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 출연한 백일섭(왼쪽)과 E채널 '별거가 별거냐'에 출연한 김지영(오른쪽). /방송 캡처

E채널 '별거가 별거냐'는 '미리 체험하는 졸혼'을 표방한다.

별거하면서 잃어버린 '나만의 시간'을 다시 찾는다는 콘셉트인데,

별거에 돌입한 배우 남성진·김지영 부부가 각각 요가와 탱고 강습을 끊어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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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권하는 '졸혼'

이혼 부부 10쌍 중 3쌍은 황혼이혼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5년 이혼한 부부 10만7300쌍 중 30.4%가 결혼 20년 차 이상인 부부였다.

4년 이하(22.9%) 신혼부부를 앞지른 것이다.

1990년만 해도 황혼 이혼 비율은 5.2%에 불과했으나 2000년 14.3%, 2010년 23.8%, 2015년 29.9%로

크게 증가했다.

황혼이혼은 가능하면 졸혼으로 대체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측은 "작년부터 졸혼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법원 측에서 졸혼을 권하기도 하고,

이혼조정을 신청한 사람이 먼저 '졸혼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황혼 이혼조정에서 졸혼으로 합의된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황혼이혼의 경우 재산분할 관련 기여도 산정이나 연금재산 분할 등에서 갈등이 상당한 편이지만,

졸혼은 법적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복잡한 다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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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졸혼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이다.

결혼제도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서로 떨어져 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특히 직장 생활에 살림과 육아까지 도맡는 여성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힘든 생활도 과정일 뿐 언젠가 완료된다'는 생각을 하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라는 이유에서

졸혼을 지지한다.

한국 상륙한 '졸혼'에 여성들이 더 솔깃?

졸혼을 바라보는 미혼남녀의 시선도 긍정적이다.

결혼 정보회사 가연이 모바일 결혼 정보서비스 '천만 모여'회원 548명(남 320·여 228)을 대상으로

'졸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미혼남녀의 57%가 이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남성(54%)보다 여성(63%)이

결혼 후 자녀까지 독립했을 때 배우자에게 졸혼 의사를 전달할 의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가정과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여성의 경우 졸혼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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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면 결혼을 왜 해?"

졸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졸혼하면 '연애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거나 '쿨하고 홀가분하게 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현재 졸혼 상태에 있는 중년 부부들은 이혼 직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졸혼이 당장 이혼을 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사생활 보장 등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부부 중 한쪽이 '이럴 바엔 이혼하지, 졸혼은 말장난'이라고 나서 결국 이혼하게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여성조선이 남성 응답자 61명을 포함해 총 191명을 대상으로 '결혼과 부부생활'에 대한 설문 조사한 결과,

'졸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냥 이혼이라 할 것이지, 포장 한 번 그럴싸하게 하네"라는 의견이 24%를 차지했다.

졸혼, 반혼, 합혼, 계약혼 등 다양해지는 혼인형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전부 말장난 같다. 사실 결혼 아니면 이혼이지 뭐"라는 의견이 31%로 우세였다.


졸혼도 경제적 능력 뒷받침 돼야
 
따로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거나 생활비를 따로 지출해야 하는 금전적인 문제도 따른다.

생활비뿐 아니라 문화생활이나 여행 등의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경제적 자립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에서야 졸혼을 실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혼하려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졸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남편과 나이 차가 열 살 이상 났던 한 60대 여성은 이혼조정을 신청했다가 졸혼에 합의했는데,

이때 연금 수령 여부가 영향을 미쳤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남편과 이혼할 경우 남편이 사망하면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지만,

졸혼하면 법적으로 부부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남편이 사망해도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사실 졸혼이란 말이 없었을 뿐 같은 모습을 한 부부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각방을 쓰며 '쇼윈도 부부'로 살거나, 서로 떨어져 살다 집안 경조사 때만 만나는 경우 등이 있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하고 약속한 것이 졸혼이다.


졸혼여전히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등장한 완곡한 해체 방식이다.

체면을 중시해 이혼을 거부하던 배우자가 졸혼을 받아들이는 때가 그 경우이다.

또한, 중년 여성층서 졸혼에 대한 갈망이 더 높은 이유는

불균형한 가사 노동시간 등 사회적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늘어나는 황혼이혼을 막거나 늦출 방법으로서 졸혼이 상당한 대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긍정도 부정도 하긴 어렵다.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해혼(解婚)·합혼·계약혼 등 다양한 종류의 혼인 형태가 생겨나고 있는 시점에서,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된 이후 생각해 봄 직한 혼인 형태의 하나로서 졸혼을 바라보면 어떨까.

■ 참고
졸혼:결혼관계의 재해석(2017) /강희남
조화로운 가족공동체에 관한 연구(2017)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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