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동네 초밥집에 갔습니다. 저와 아내, 아이 둘. 이렇게 네 사람이 마주 앉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밥이 나왔습니다. 큰 아이의 앞접시에 초밥이 서너 점 올라갔죠.
음식을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접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빙글빙글.
탁자 위에서 초밥을 얹은 접시가 돌아가더군요.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장난을 칠만한 나이죠.
야단을 치려고 했습니다. 식당에서 음식 접시를 돌리는 게 보기 좋은 행동은 아니더군요.
“이제, 그만! 음식으로 장난치는 게 아니야”하고 야단칠 참이었죠.
그런데 아이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접시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겁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멈칫했죠.
‘얘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리고 식탁 위를 다시 봤습니다.
그랬더니 주황색의 연어 초밥, 흰색의 광어 초밥, 알록달록한 접시 색깔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재미난 무늬를 만들고 있더군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왜냐고요?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양, 이런 색깔이 섞여서 빙글빙글 돌아갈 때는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이 나오는 걸까.
그런 물음에 아이는 스스로 답을 찾고 있더군요.
혹시나 해서 슬쩍 물었습니다. “어디가 제일 예뻐?”
그러자 아이는 “아빠, 흰색이랑 주황색이 섞이니까 참 예쁘지”라며 뿌듯하게 대답했습니다.
마치 자신의 작품이라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꼬마의 꿈은 화가거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덧 살 때부터 줄기차게 “나는 화가가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
무척 사소한 에피소드죠. 그렇지만 ‘현문우답’은 느낀 게 많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아이의 행동만 보면 안 되겠구나.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마음을 봐야겠구나.”
세상 부모들은 고민합니다.
어떡하면 창의적인 아이로 키울까, 어떡해야 지혜로운 아이로 자랄까.
구체적인 방법은 모릅니다. “어디 그런 학원이라도 없나. 그럼 얼마든지 보낼 텐데.” 푸념만 합니다.
그런데 창의성의 싹은 아이의 마음에서 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분의 화초처럼 올라옵니다.
그 화초가 뭐냐고요? 다름 아닌 물음표입니다. 아이의 마음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물음표.
부모가 할 일은 그 물음표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거들어주는 겁니다.
식당에서 접시를 돌리던 아이의 물음표는
“얌전히 있어!” 한마디에 ‘싹둑!’하고 싹이 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달라집니다. 물음표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핍니다.
색깔에 대한 물음, 모양에 대한 물음, 움직임에 대한 물음이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는 인간에 대한 물음, 세상에 대한 물음, 우주에 대한 물음으로 커가는 겁니다.
훗날 그런 아이가 자라서 그리게 될 그림의 깊이는 다르겠죠.
아이의 마음에는 근육이 있습니다.
팔뚝 근육을 보세요. 쓰면 쓸수록 강해지죠.
마음의 근육도 그렇습니다. 자꾸 쓸수록 강해집니다.
그래서 운동이 필요합니다. 어떤 운동이냐고요?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는 운동입니다. 깊이 묻고, 깊이 답하는 운동입니다.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며 마음 근육의 힘줄이 강해집니다.
마치 쪼그렸다 일어섰다를 반복할수록 다리 힘이 강해지듯이 말입니다.
그런 마음의 근육에서 통찰력이 나오고, 지혜가 나오는 거죠.
아이가 쏟아내는 소소한 물음표를 무시하지 마세요. 직접 답을 찾게 하세요.
소소한 물음의 답을 찾을 때 아이는 자신의 인생에서도 답을 찾게 될 테니까요.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