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하루명상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4> 바다를 보며 배우다

colorprom 2011. 8. 18. 16:52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4> 바다를 보며 배우다





# 풍경1 : ‘말씀은 하느님(하나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어둠이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복음 1장 1~5절)

요한복음의 머리글입니다.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죠.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왜냐고요?

여기에는 세상의 존재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일단 손을 번쩍 들어서 궁금증부터 풀어보시죠. 

먼저 이 대목, 궁금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무슨 말일까요. 철수는 부모님이 낳았고, 나무는 묘목이 자란 거고, 바위는 오래 전부터 바위였죠.

다 각각 태어난 거죠. 그런데 왜 이들이 모두 그분을 통해서 생겨났다고 할까요.

언뜻 들으면 과장이 심한 걸로 들립니다.

바다와 파도를 알면 도움이 될까요.

바다(말씀·하느님)를 보세요. 거기서 파도(창조물)가 생겨나죠.

어떤 파도는 철수처럼 생겼고, 어떤 파도는 나무처럼 생겼습니다. 또 어떤 파도는 바위처럼 생겼죠.


파도의 입장에서 보면 철수는 철수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바위는 바위일 뿐입니다.

각각 동떨어진 독립적인 존재죠.

그런데 바다의 눈, 전체의 눈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바다에서 나오지 않은 파도는 없습니다.

철수라는 파도, 나무라는 파도, 바위라는 파도, 모두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다’고 하는 겁니다.

그걸 성경에선 ‘하느님의 형상을 본 따 사람을 빚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 ‘바다의 형상을 본 따 파도를 빚었다’는 겁니다. 

덜커덕!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철썩 대는 파도는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다가 ‘툭!’하고 바다와 떨어집니다.

그때 파도는 바다에서 분리되죠.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바다를 까먹고 철썩 대는 파도와 똑 닮았죠.

그래서 철수도, 영희도 바다를 잊어 먹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파도의 삶은 늘 불안하고 힘이 들죠.


마지막 구절의 메시지가 각별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무슨 뜻일까요. 파도 속에 바다가 있지만, 파도는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가 그를 깨닫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 풍경2 : 불교에선 그런 바다를 공(空)이라고 하죠. 파도는 색(色)이라고 부릅니다.

바다와 파도는 본래 하나죠. 바다 안에 파도가 있고, 파도 안에 바다가 있죠.

공과 색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공(空)은 눈에 보이질 않죠.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空)을 못 보고, 색(色)만 봅니다.


우리는 종종 화가 납니다. 화가 나기 전과 난 후를 보세요.
화가 나기 전에는 그저 마음이 편하게 비어있죠. 그게 공(空)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욱’하고 화가 올라옵니다. 그게 색(色)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화’를 어떻게 볼 건가죠.
거기서 바다가 될 건가, 파도가 될 건가로 갈라집니다.

화를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세상의 모든 화는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모든 파도가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그걸 깊이 바라보면 화가 ‘비어있는 화’임을 알게 되죠.
비어있지 않으면 화가 난 상태로 50년, 100년 지속되겠죠.
그런데 화(色) 속에 공(空)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겁니다.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졌다가도 커피 한 잔 마시면 착 가라앉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걸 정확히 알면 화를 붙드는 손아귀의 힘이 약해지죠.
그렇게 쭉 가다 보면 파도 속에서 바다를 보게 됩니다.

쉬잇!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들리세요? 내 안에서 출렁이는 저 거대한 바다의 소리가 말입니다.
철~썩! 철~썩!

백성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4> 바다를 보며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