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한 구절이냐고요? 페르시아의 오래된 속담입니다.
요즘은 너도 나도 ‘통찰력’을 찾습니다.
그래서 다들 묻습니다.
저는 목숨을 건 듯이 책 읽는 사람도 여럿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사람도 있고, 1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가톨릭 신부님은 “지금껏 성경책만 1000번을 읽었다”고 하더군요. 참 어마어마한 독서량입니다.
그런데 뜻밖입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이들도 통찰력은 제각각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통찰력이 더 강한 것도, 책을 적게 읽는다고 통찰력이 더 약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열 권 읽는 사람보다 한 달에 한 권 읽는 사람의 통찰력이 더 번득일 때도 있더군요.
그래서 더 유심히 살폈습니다. 강한 통찰력의 소유자들. 그들은 대체 무엇이 다를까.
공통점이 있더군요. “어유, 내가 통찰력은 무슨…”하면서도 꼭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기보다, 책을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아하! 싶더군요. 창고에 오래 묵혀둔 책에서만 곰팡이가 피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손에 들고 내가 읽는 책에서 곰팡이가 필 수도 있더군요. ‘명상’이 생략된다면 말입니다.
좌선한 채 고요히 앉아 있는 게 명상이 아닙니다.
깊이 묻고, 깊이 생각하고, 깊이 궁리(窮理)하는 게 명상입니다.
독서를 할 때는 책과 내 마음이 마주 앉습니다.
책에는 문고리가 있습니다. 온갖 정보와 지식, 저자의 경험이 담긴 창고를 여는 문입니다.
독자는 그걸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게 다는 아닙니다. 독서에는 또 하나의 문고리가 있습니다. 그건 책과 마주한 내 마음의 문고리입니다.
그 문고리는 책만 읽는다고 잡히진 않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 깊이 묻고 궁리할 때 비로소 잡히는 문고리입니다.
책에도 길이 있고, 내 마음에도 길이 있습니다.
페르시아 속담을 다시 읽어봅니다. ‘달을 찾으려면 연못이 아니라 하늘을 보라.’
-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