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성호
- ‘백성호의 현문우답-붓다를 만나다’ 시리즈를 오늘부터 격주로 연재합니다.
- 지난해 연재한 ‘예수를 만나다(총 42회)’ 시리즈에 이은 기획물입니다.
- 2600년 전 붓다가 살았던 인도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갑니다.
- 붓다가 태어나고, 방황하고, 수행하고, 깨닫고, 법을 펼쳤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
- 붓다의 생애, 붓다의 메시지를 만납니다.
<백성호의 현문우답/붓다를 만나다①-붓다는 왜 옆구리로 태어났을까>
열 사람이 가면 여덟이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둘만 살아서 돌아왔다. - 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로 갔던 승려들 이야기다.
- 산중에는 도적떼가 우글거렸다.
-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쓰러지거나,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에서 실족할 때는
- 시신조차 건지지 못했다. 인도로 가는 길은 그토록 험했다.
육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뱃길을 택한 이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름한 목선과 조잡한 항해술로 집채만한 파도에 잡아먹히지 않아야만 인도땅을 밟을 수 있었다.
- 중국의 현장 법사는 땅에서, 신라의 승려 혜초는 바다에서 목숨을 걸었다.
- 붓다의 법(佛法). 그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 왜 동아시아의 수행자들은 목숨을 걸고 인도로 갔을까.
지난 겨울 끝자락에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봄으로 들어서면 인도는 뜨거워진다. 기온이 40~50℃를 웃돈다.
숨을 들이마시면 ‘불덩어리’가 코와 입으로 훅훅 밀려온다. 냉방 시설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행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그래서 순례객이나 여행객들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인도로 떠난다. 나도 그랬다.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인도로 갔다.
- 인천공항에서 델리까지는 아홉 시간이 걸린다.
- 인도땅이 가까워지자 비행기 창밖으로 히말라야 설산이 보였다. 구름이 바다처럼 깔려 있었다.
- 그 위로 히말라야 고봉(高峰)이 섬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장관이었다.
- 비행기 날개와 거의 수평으로 안나푸르나의 정상이 장엄하게 서 있었다.
- ‘2600년 전, 저 히말라야 산맥 남녘땅에서 붓다가 태어났다. 붓다는 거기서 성장했다.’
- 붓다의 땅, 붓다의 나라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델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공항 청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인도는 달라지고 있었다.
- 8년 전 인도를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이 나라는 100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 기차역의 화장실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지저분하고 낙후된 나라였다.
- 지금은 달랐다. 곳곳에서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고, 신도시가 생겨나고,
- 지난해 11월에는 모디 총리가 불시에 화폐개혁까지 단행했다.
- 최고액권을 중심으로, 통용되는 화폐의 86%를 종잇장으로 만드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였다.
- 물론 탈세와 지하경제를 잡기 위한 대수술이었다.
- 모디 총리는 당시 TV생방송에 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 인도인 가이드는 “불가촉천민 출신인 모디 총리에 대한 인도 국민의 지지도는 현재 80%를 웃돈다”고 말했다. 그런 국가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 인도가 나는 솔직히 부러웠다.
- 나는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로 갔다.
붓다가 태어난 땅은 카필라 왕국이었다. - 히말라야 산맥 아래의 북인도였다. 지금은 네팔 영토다.
- 그래서 인도와 네팔은 종종 다툰다.
- “붓다는 인도 사람”이라는 인도 측 주장과 “아니다, 네팔 사람”이라는 네팔 측 주장이 맞선다.
- 그런데 인도냐, 네팔이냐 따지는 건 지금의 기준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런 국경도 없었다.
- 붓다는 그저 카필라 왕국 사람이었다.
- 당시에는 코살라국ㆍ마가다국ㆍ밤사국ㆍ말라국 등 인도에 16개 왕국이 있었다.
- 그 중 하나인 카필라 왕국은 아주 작고 약한 나라였다.
- 버스는 룸비니를 향해 달렸다.
- 창밖의 풍경은 무척 낯설었다.
- 1950년대나 60년대, 아니면 70년대 한국의 거리 풍경이 저랬을까.
- 가난한 나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 붓다의 유적은 유피주와 비하르주에 유독 많았다.
- 인도에서도 북부의 유피주와 비하르주는 궁핍한 오지가 많다.
- 그래서일까.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내 가난의 풍경과 마주쳐야 했다.
- 룸비니로 가려면 인도와 네팔의 국경을 통과해야 했다.
- 버스는 국경 앞에서 멈추었다.
- 말이 국경이지 경계선은 허름했다. 작은 검문소와 낡은 바리케이드가 있을 뿐이었다.
- 그래도 총을 든 군인은 더러 보였다.
- 네팔로 넘어가자 경치는 조금 달라졌다. 뭐랄까, 좀 더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 버스는 룸비니에 도착했다.
-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이다.
- 버스에서 내렸다. 길에서는 먼지가 폴폴 났다.
-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보고 싶었다. 붓다가 태어났다는 장소.
-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장소.
-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읊었다는 장소.
- 그 역사적 현장을 보고 싶었다.
- 룸비니 동산은 깔끔했다. 푸른 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했다.
-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검문검색을 했다.
- 순례객들은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남방 불교의 전통이다.
- 스리랑카의 사원에 들어설 때도 맨발이어야 한다. 나는 양말까지 벗었다.
- 룸비니 동산 안으로 들어서자 햇볕에 데워진 돌바닥이 따스했다.
- 2600년 전 샤카족은 인도 북부에 살았다.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이는 땅이었다.
- 왕의 이름은 숫도다나, 성(姓)은 고타마(Gautama)였다.
- 왕비의 이름은 마야데비(Mayadevi)였다. 우리는 흔히 ‘마야 부인’이라 부른다.
- 팔리어 경전에는 왕비 마야가 ‘대지처럼 의젓하고,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기록돼 있다.
- 아마도 넉넉한 품성에 미모를 갖춘 여인이 아니었을까.
- 요즘도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에 태몽을 살핀다. 붓다 당시의 인도도 그랬다.
- 하루는 왕비가 꿈을 꾸었다. 흰 코끼리가 왕비의 몸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 붓다 당시는 고대 힌두교 사회였다.
- 힌두교에는 약 3억에 달하는 신이 있다고 한다.
- 그 신들은 종종 동물의 모습으로 화현한다.
- 힌두교에는 인드라 신이 있다. 번개를 움직이는 신이다.
- 인드라 신은 ‘아이라바타(Airavata)’라는 흰 코끼리를 타고다닌다.
- 그래서일까. 힌두교에서는 흰 코끼리를 고귀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긴다.
- 불교 국가인 태국은 아예 국가의 수호신을 흰 코끼리로 삼고 있다.
- 그러니 왕비 마야의 꿈은 길몽이었다.
- 한국으로 치면 봉황이 날아와 품에 안기는 꿈 정도나 됐을까.
- 나는 마야데비 사원의 입구로 갔다. 왕비 마야가 아들을 낳았다는 장소다.
- 사원 건물의 지붕에는 황금빛의 작은 탑이 하나 있다.
- 탑에는 그림이 있었다. 두 눈 사이에 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 나는 네팔 사람에게 물었다. “저 점이 뭐죠?”
- 그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 “저건 왼쪽 눈도, 오른쪽 눈도 아닌 제3의 눈이다.
- 우리는 그걸 ‘마음의 눈’이라 부른다.
- 깨달음이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다.”
- 그러니 마야데비 사원은 ‘제3의 눈,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이의 탄생지다.
-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꽤 넓었다.
- 땅바닥에는 유적을 발굴 중이었고, 그 위로 다리처럼 나무판을 깔아 걸을 수 있게 했다.
- 바닥에는 세계 각국의 동전과 지폐가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가 담긴 동전들이었다.
- 붓다의 탄생 일화에는 수수께끼의 코드가 박혀 있다. 다름 아닌 옆구리 출생이다.
- 왕비 마야는 붓다를 옆구리로 낳았다고 한다.
- 그렇다고 당시 제왕절개를 했던 것도 아니다.
- 나는 탄생지 둘레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 ‘실제 왕자가 옆구리로 태어났을 리는 없다. 그럼 이건 하나의 상징이자 은유이다.
- 옆구리 탄생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걸까.’
- 인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계급 때문"이라고 답했다.
-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는 4성 계급이 있다.
- 성직자는 브라만, 왕족과 무사는 크샤트리아, 상인은 바이샤, 하층민은 수드라다.
- 힌두교 신화에는 브라만은 신의 입에서 태어났고, 크샤트리아는 신의 옆구리에서,
- 바이샤는 신의 다리에서, 수드라는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붓다는 왕족이니 크샤트리아 계급이었다.
- 그래서 왕비 마야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풀이다. 다소 평면적인 해석이다.
절집에서 이 대목은 수수께끼처럼 거론되기도 한다.- 한마음선원의 대행(1927~2012) 스님은 생전에
- “부처님의 옆구리 출생은 ‘중도(中道)’를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선승인 고우 스님도
- “주위에 있는 스님이 나보고 도통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라.
- 부처님의 옆구리 출생은 ‘중도(中道)’를 뜻한다”고 말했다.
- 그럼 아기 붓다의 옆구리 출생이 왜 ‘중도(中道)’를 뜻하는 걸까.
사람들은 어디로 태어날까.- 엄마의 자궁을 통해 아래로 태어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출생이다.
- 아버지의 기질과 업장이 자식에게, 다시 그 자식에게 수직으로 내려온다.
- 과학에서는 그걸 유전자라 부르고, 불교에서는 인과의 윤회라고 부른다.
- 붓다의 출생은 달랐다. 위에서 아래로 계단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 1을 딛고 2가 나오고, 2를 딛고 3이 나오는 식이 아니었다.
- 붓다는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 그럼 옆구리 이전은 무엇이었을까.
- 그건 3 이전의 2, 또는 2 이전의 1이 아니었다.
- 아들 이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 붓다는 그런 패러다임을 파괴했다.
- 그래서 붓다가 뚫고나온 옆구리의 이전은 ‘공(空)’이다. 숫자로 표현하면 ‘0’이다.
- 그래서 옆구리 출생에 담긴 의미가 심오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출생, 그 근원과 바탕을 ‘로고스(말씀)’라고 표현한다.- 그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는 역사적 사건. 그게 바로 예수의 출생이다.
- 예수 역시 위에서 아래로 태어나지 않았다.
-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기는 했지만, 예수는 성령에 의해 잉태됐다.
- 누가 누구를 낳고, 그 누가 또 누구를 낳는 식의 출생이 아니었다.
붓다의 출생도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아기 붓다는 ‘공(空)’의 옆구리를 뚫고 튀어나온 ‘색(色)’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붓다의 출생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상징한다.
- 그게 ‘중도(中道)’를 관통하는 본래적 의미다.
- 마야데비 사원을 거닐며 생각했다.
- 그럼 붓다만 옆구리로 태어났을까.
- 붓다만 '0'에서 태어났을까.
- 아니다. 우리는 모두 '0'에서 태어났다.
-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다만 망각했을 뿐이다.
- 옆구리 이전의 나, 태어나기 이전의 나,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주인공.
- 그걸 잊어버렸을 뿐이다.
- 그래서 붓다가 이 땅에 왔다.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 말이다.
- ‘너는 어디로 태어났나, 너는 누구인가’.
맨발로 룸비니 동산을 걸었다. - 그 물음이 내면의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룸비니(네팔)=글ㆍ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붓다를 만나다1-붓다는 왜 옆구리로 태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