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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 (조선일보)

colorprom 2017. 7. 17. 17:54

극한의 경험 ‘전쟁’에서 계시를 받다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궁극의 경험은 무엇일까.
바로 죽음을 가까이 경험하는 것에서 온다.
전쟁을 통해 계시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유발 하라리는 뒤짚었다.

      

입력 : 2017.07.14 07:07

[Books]
 

유발 하라리의 극한의 경험 책 사진.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 지음|김희주 옮김
옥당|576쪽|2만3000원


“내가 해봐서 아는데….”

권위는 때로 경험에서 나온다. 권위는 경험이 얼마나 힘든가에 비례한다.

공익근무요원보다는 해병대를 쳐주고, 전쟁을 경험한 사병은 훈련만 해온 특전사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다.


그렇다면 ‘궁극의 경험’, 최고의 권위를 가져다 줄 경험은 무엇인가.


원제 ‘The Ultimate Experience’가 보여주듯, ‘마지막, 즉 죽음을 가까이 경험하는 데서 온다.


참전용사들은 “설명할 수 없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쟁터에서 그들은 일반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에서 주인공 베주호프 백작이 마침내 찾아낸

영원한 진리의 화신’이 평생을 군에 바친 늙은 사병이었음은 수긍이 간다.


이 상식에 유발 하라리(41) 히브리대 교수는 균열을 일으킨다.

생사가 갈리는 전장(戰場)에서 인간은 깨달음을,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계시(啓示·revelation)를 얻는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직접 경험을 통해 일종의 계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현상은 18세기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극한의 경험’을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문화는 생긴 지 300여 년도 안 된 근대적 현상이라는 말이다.


인류 역사를 개괄한 ‘사피엔스’(2014)로 이름을 떨쳤지만

하라리는 본디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 박사.

2008년에 쓴 이 책에서 그는 자유분방하게 600년에 달하는 시공간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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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글턴 코플리가 그린 ‘1781년 1월 6일 페어슨 소령의 죽음’(1783).
영국령 저지 군도로 침입한 프랑스군과 싸우다 사망한 영국 장교를 병사들이 나르는 모습이다. 하라리는 “이 그림은 관람객에게 당신들은 전쟁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선언한다”고 썼다. /위키피디아커먼스

그는 1450~1740년, 1740~1865년, 1865~2000년으로 시기를 나누고 각 시기 전쟁 경험담의 특징을 살핀다.

그리고 “174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1740년 이전까지는 전쟁을 ‘계시 체험’, 즉 지식을 얻는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전쟁에서 환멸을 느꼈다는 기록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증언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1740년 이후부터는 전쟁터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1813년 나폴레옹 군대와 전투를 앞둔 영국군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부터 24시간 이내에 나는 책만 쓴 그 어떤 현자나 철학자보다 더 현명해져 있을 거야.”

하라리 교수의 글과 말은 명상의 역할이 8할이다.
그는“명상을 통해 집중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완벽한 고립, 견고한 고독이다.
하루에 두 시간, 그리고 1년에 두 달.
책 읽기와 글쓰기도 하지 않고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텔아비브 외곽에 있는 자기 집 거실에서. 사진작가 Katia Serek. /조선DB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도식화한다.


1740년 이전에는 ‘지식=성경×논리’였는데

인본주의가 널리 퍼지고 낭만주의 사조가 문화를 지배하면서 ‘지식=경험×감수성’이 됐다는 주장이다.

책상물림보다는 전장에 다녀온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 널리 퍼진 낭만주의는 ‘숭고한(sublime)’ 경험을 지식과 권위의 원천으로 강조했다.

‘숭고’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바로 전쟁 경험이었다.

과학적으로 계량화하거나 언어화하지 못해도 괜찮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하라리가 600년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논지에 부합하는 문학과 미술 작품을 자유자재로 호명하는 솜씨는 ‘사피엔스’ 이전에도 일품.


1781년 영국령 저지 군도로 쳐들어온 프랑스군과 싸우다 전사한 영국군 장교를 그린

싱글턴 코플리의 ‘1781년 1월 6일 페어슨 소령의 죽음’(1783)을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림 속 병사들은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며 전투 경험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림은 관람객에게 군인들은 심오한 경험을 겪고 있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관람객은 열등한 위치에서 군인들의 경험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전한다.”


영국 시인 키플링보어(Boer) 전쟁에서 귀환하는 병사를 보며 쓴 시 ‘귀향’(1903)도 끌어온다.

어디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평범한 아이로 떠났고, 생각하는 남자로 도착했다.

극한의 경험에 권위를 부여하는 풍조를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그는 덧붙인다.


하라리는 책 끝에서 18세기 고개를 들고,

지금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계시적 전쟁 해석’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을 통해 계시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은 한발 더 나아가면

“전쟁만이 유일한 진리고, 평화는 환상”이라는 위험한 발상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식=경험×감수성’이란 도식은 현대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결함이 있고, 숭고함을 전제하는 전쟁 경험담과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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